Reading Story

#0250 - 기사단장 죽이기 2,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하나모자란천사 2018. 12. 24. 19:21

 2018년 책 100권 읽기 백 서른네 번째 책입니다


조금 혼란스럽다. 고민거리가 생겼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연말에 남은 연차 소진하라고 해서 연차를 사용했다. 오전에 카페에 나왔다. 오후에는 사업계획 때문에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 그냥 맘 편하게 책을 읽고 싶다. 아내에게는 연차 사용하고 출근해야 한다고 말하기가 그래서 출근한다고 이야기하고 카페로 나왔다. 별다방이다. 별다방은 아침 일찍 오픈해서 좋다. 커피와 베이글을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2편, 전이하는 메타포다.




이 책은 회사 직원에게 빌린 책이다. 오래되었는데 계속 읽지 못하고 있다가 해는 넘기지 않고 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책을 읽었다.



책의 두께 때문에 책을 읽기가 부담스러웠다. 책을 읽기 전까지 이런 고민을 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고민은 금방 사라지고 없다.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 그냥 잠깐 쉴 수 있는 곳이면 그곳에서 책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와 같이 이 소설에서도 현실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세계가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책의 표지에는 이곳은 정말로 현실세계일까?라고 남겼다.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믿을 수는 있다. 어딘가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소설을 읽으면 책의 내용도 좋지만 책에서 묘사된 상황을 머리로 그림을 그리듯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 좋다. 아래는 내가 책을 읽으면 그림을 그린 내용들이다.


내가 방어구이를 먹고, 된장국을 마시고, 밥을 씹는 모습을 아키가와 마리에는 식탁에 팔꿈치를 괸 채 신기한 광경인 양 관찰했다. 마치 정글을 산책하던 중 거대한 비단뱀이 새끼 오소리를 통째로 삼키는 현장을 맞닥뜨리고, 가까운 바위에 앉아 구경하는 것처럼.


나이가 몇이든 모든 여자에게 모든 나이는 곧 미묘한 나이다. 마흔한 살이든 열세 살이든 그녀들은 언제나 미묘한 나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소소한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이데아는 타인의 인식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동시에, 타인의 인식을 에너지 삼아 존재하네.”

“그럼 혹시 제가 ‘기사단장은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군요.”

“이론적으로는.” 기사단장이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얘기야.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왜냐하면 사람이 어떤 생각을 멈춰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멈춘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니까. 무언가를 그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나의 생각이고, 그 생각을 갖고 있는 한 그 무언가 역시 생각의 대상이 되거든. 무언가를 생각하기를 멈추려면 그걸 멈추려는 생각 자체를 멈춰야 해.”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다. 때문에 이런 글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지금 나에게 힘이 되는 한 줄의 글이다.


“어떤 일이든 밝은 측면이 있어. 제아무리 어둡고 두꺼운 구름도 뒤쪽은 은색으로 빛나지.” 


힘들 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이 한 줄의 문장에서 해답을 얻었다.


“제게는 생각할 일이 많습니다.  읽어야 할 책과, 들어야 할 음악이 있어요. 많은 데이터를 모아 분류하고, 해석하고, 머리를 쓰는 것이 일상적인 습관입니다. 운동도 하고, 기분전환 삼아 피아노 연습도 합니다. 물론 집안일도 해야죠. 따분할 틈이 없습니다.“


힘들지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내가 아무리 평범할지라도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텅 빈 인간 말입니다.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지금껏 저 자신이 제법 똑똑하고 유능한 인간이라고 믿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감도 좋고, 판단력과 결단력도 있습니다. 체력도 타고났고요. 어떤 일에 손대도 실패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원하는 것은 거의 전부 손에 넣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제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될 거라 생각했지요. 세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장소에 닿을 거라고요. 하지만 쉰을 넘기고 거울 앞에 서서 발견한 것은 그저 텅 빈 인간이었습니다. 무입니다. T.S. 엘리엇이 말한, 빈 부분을 지푸라기로 채운 인간"

 

"나도 아버지가 남긴 것 중 하나야. 완성도가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체할 수는 없어."

"맞는 말이야. 아무리 범용 할지라도 대체할 수는 없지."


“우리 인생에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고, 또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일도 많습니다. 특히 설명함으로써 그 안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와 같은 상상의 세계를 꿈꾼다. 잠시나마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완성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임을 잊지 말자.


그러나 이곳은 정말로 현실세계일까?

나는 내 주위에 펼쳐진 세계를 새삼 둘러보았다.

풍경은 눈에 익었다. 

창으로 흘러드는 바람에서는 여느 때와 같은 냄새가 났고,

주위에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언뜻 현실세계로 보일 뿐 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완성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모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