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좀 나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는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 순간 패닉 룸(Panic Room)이란 영화가 떠 올랐다. 이 영화를 최근에 읽었던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상상충전 사진 읽기 ‘사진의 극과 극’을 읽다가 그녀가 이 영화에 대한 소개한 글을 읽고 책을 내려놓고 영화를 보았다. 그녀는 김시연 작가의 사진을 보다가 맥 알트만의 얼굴이 떠 올랐다고 한다. 평론가나 카피라이터는 관찰력은 대단한 것 같다. 별개의 사건이나 작품에서 자신이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영화를 떠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신기함을 느낀다. ‘패닉 룸’이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최현주 작가는 그림 한 편을 보다가 멜 알트만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영화 패닉 룸의 주인공인 조디 포스터가 맡은 역할이다.
멕 알트만의 얼굴이 떠 올랐다. 있는 힘을 다해 “어서 썩 꺼져버리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 후 찾아오는 긴 고요와 팽팽한 긴장. 그런데 멕 알트만이 누구?
2002년 막 이혼을 하고 어린 딸과 함께 뉴욕 맨해튼의 4층짜리 고급주택으로 이사를 왔던 여자.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여기저기 집을 소개받다가 그 집 침실에 딸린 방 하나가 마음에 쏙 들어 당장 계약을 하고 단김에 이사를 온 여자 말이다. 망치나 총으로도 뚫을 수 없는 강철문, 별도의 전화선과 자체 환기 시스템, 집안 곳곳을 살필 수 있는 여덟 대의 감시 카메라와 모니터, 비상식량과 물이 구비되어 있는 방.
이사 온 첫날밤, 빈집인 줄 알고 세 명의 남자가 침입한다. 강도다. 강도 중 한 명은 패닉 룸을 설계한 당사자. 멕이 딸을 데리고 패닉 룸에 숨어 모니터로 침입자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필요한 것 가지고 썩 나가!” 멕은 그들을 향해 소리치는데, 문제는 그들이 필요한 것이 하필 패닉 룸 안에 있다는 것. 전 주인이 숨겨둔 거액의 돈이 패닉 룸의 금고 안에 있었던 것이다.
계속 안에 있어야 할까? 밖으로 나가야 할까?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요새가 더 이상 숨어 있을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위험 공간이 되어버린 상황. 외부로부터의 차단을 원했으나 거꾸로 내부에 감급이 되어 버린 역설. 이것이 이 영화의 콘셉트이다.
이 영화는 2002년에 개봉된 영화다. 당시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다. 영화를 좋아할 때였고, 좋은 영화는 빠지지 않고 보았던 때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보았던 기억이 없다. 왜 일까? 어쩌면 영화를 개봉한 시기가 2002년 월드컵이 전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유가 될 것 같다. 좋게 봤다. 스토리가 좋다. 역시나 스토리가 좋으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쭉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