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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9 - 한 장의 사진미학, 진동선의 사진 천천히 읽기

하나모자란천사 2018. 11. 21. 14:28

 2018년 책 100권 읽기 백 스물세 번째 책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만 흘려보낼 수는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배우는 것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아직은 아무것도 준비가 된 것이 없다. 사진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의 일부일 뿐이다.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은퇴 이후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은퇴 이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찾아야 한다. 사진은 나를 찾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지금은 하나씩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뭐라도 하나씩 배우자.




진동선 작가의 책이 좋다. 그가 사진에 대해 평론하는 것이 좋다. 그의 책 '좋은 사진'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은 후 책이 좋아서 구입을 했다. 가끔 사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을 때 그의 책을 꺼내어 읽는다.




월간 사진 10월호 잡지를 읽으면서 진동선 작가의 칼럼을 읽었다. 그의 글이 좋다. 읽기가 편하다. 그의 다른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그때에 눈에 띈 책이 바로 '한 장의 사진미학'이다. 진동선의 사진 천천히 읽기이다.



카메라를 손에 쥐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잘 찍고 싶다고 갈망한다. 그러나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그것을 깨우쳤기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진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지금까지는 빛에 대한 이해와 빛을 다루기 위해 카메라를 조작하는 기술적인 내용을 설명한 책을 주로 읽었다. 지금 한 권의 책을 더 읽고 있다. 이 책으로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적인 내용은 최종 마무리하고 정리하고 싶다. 그럴 때가 되었다. 이제는 작가들의 사진 세계를 탐구하며 사진의 깊이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위 사진 한 장에서 설명할 수 없지만 강렬한 뭔가를 느꼈다. 작가의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사진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이 내게는 갖춰지지 않았다. 처음이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역시나 강렬한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고 떠 올린 사진이 있다. 둥글게 몸을 감싸고 있는 여인의 누드사진이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사진을 보고 누드 사진에 대해 달리 생각을 했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보다 적당히 감추었을 때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사진의 깊은 부분을 작가의 비평을 통해 알려고 했지만 어렵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 어렵게 느껴졌다.



오래된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이 찍힌 그 시대상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위 사진에는 전신주에 'This is SEOUL'이라는 문구가 있다. 625 전쟁 중인 1951년에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사진을 통해서 사진의 길과 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평론가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사진의 층위 혹은 격을 규정하는 틀을 가지고 사진을 평가한다. 첫째 사진인가? 둘째 작품인가? 셋째 예술인가? 넷째 미학인가? 다섯째 역사인가? 다시 말해 사진보다 작품을 작품보다 예술을 예술보다 미학을 미학보다 역사를 우위에 둔다.




작가는 이 사진을 평론하면서 안도현 시인의 '사진첩'이란 시집을 인용했다.


사진 속에 나는 없지만, 나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생성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나와 세상을 처음 열어젖힌 그 순간의 울음소리로부터 내가 비롯된 게 아니라, 그 이전, 이 한 장의 혼례식 사진이 찍히는 순간부터 삼신할미는 '나'라는 전혀 새로운 인간을 점지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쯤 나는 이미지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진가들이 이러한 이미지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시점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다소의 편차가 있겠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대개 사진을 시작한 지 5 ~ 10년쯤, 사물이 스스로 주체에게 와서 사진의 이미지가 되어줄 때, 혹은 하찮은 사물일지라도 언제든지 사진의 이미지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할 때이다 이때쯤이면 카메라 없이 다녀도 불안하지 않고, 카메라가 없어도 좋은 장면을 놓쳤다고 애석해하지 않으며, 손에 카메라를 쥐고 있어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자유를 갖게 된다. 당연히 영화를 보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아도 내용에 빨려 들고,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등, 과도한 집착을 보였던 사진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진다. 비로소 다시 사진 이전의 세상을 보게 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은 '육안의 연장으로서' 또는 '마음의 연장으로서' 인식과 의식의 통로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은 사진을 독서후기로 기록하기 위해 캡처해 두었지만, 지금 사진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니 정리할 수 있는 게 없다. 역시나 아직은 무리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작품을 보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미술을 공부해야겠다. 서양의 미술사를 조금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책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