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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5 - 사진작가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 배병우

하나모자란천사 2018. 11. 14. 14:58

 2018년 책 100권 읽기 백 스무 번째 책입니다


사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이름이다. 지금까지 사진과 관련된 책과 잡지를 통해서 그의 이름을 자주 접했다. 소나무를 피사체로 지금까지 계속 사진을 찍어오고 있는 사진작가.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그리 많지 않은 대한민국의 사진작가. 그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사진작가 배병우다. 그를 좀 더 알고 싶었다. 이제는 사진과 관련하여 책을 읽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으로 사천 도서관의 사진과 관련된 책 코너를 돌다가 낡은 책 한 권을 보았고, 그 책이 눈에 들어 집어 들었는데 바로 이 책이다. '사진작가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책 반납을 앞두고 그의 책을 다 읽었다. 그러나 아직 그의 책에 대해서 내가 얘기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 대신 그의 책에서 인상에 남았던 글을 요약하여 옮겨 본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해 먹고, 소나무로 만들어진 관 속에 들어가 묻혔으며, 무덤 옆에 소나무를 심지 않았던가. 실로 한국인의 삶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깊게 뿌리내린 나무라 할 만한다. 그렇다면 소나무를 단지 생물학적으로 찍을 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해 소나무에 힘을 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부터 전국의 소나무란 소나무는 다 찍어 보았다. 84년, 85년부터 촬영에 나섰는데 처음 일 년은 10만 킬로미터씩 답사를 했던 것 같다. 어떤 곳이 내가 소나무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인지를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신문이며, 잡지며 소나무 관련 기사가 나오면 빼놓지 않고 스크랩도 해 두었다. 이조시대의 소나무 그림이란 그림을 모두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경주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소나무를 보면 사람과 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인생의 굴곡을 볼 수 있듯이 소나무를 보면서 사람의 인생살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한다. 그것은 삼십여 년 동안 소나무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난 스무 살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항상 새벽녘에 촬영을 했다. 이른 아침에 숲을 향하는 것은, 해뜨기 전 안개와 섞인 광선의 미묘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어서다. 해뜨기 전이나 해질 즈음 광선의 섬세하고 미묘한 맛이 좋다. 그래서 늘 동트기 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해가 뜨기 직전과 직후, 뒤에서 역으로 빛이 들어올 때 찍는다. 그러면 빛은 하얗게, 나무는 검게 나타나 그림처럼 표현된다. 역광으로 찍는다고 다 이같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내 사진에는 나뭇잎들이 하나하나 다 보인다. 검은색도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 사진을 찍기 전에, 인화될 때의 명도를 미릿속으로 계산해 찍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정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톤을 맞춰 가며 노출을 준다. 여기에다, 현상하면서 농담을 조절한다. 그러면 질감이 살아 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1984년 낙산사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소나무를 보고는 ‘아, 저것이다. 저게 한국이구나’하고 순간적으로 느꼈다. 고정된 주제로서 무엇을 찍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낙산사 앞에서 그렇게 만난 소나무는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나는 그저 찍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카메라가 내는 셔터 소리가 좋고,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좋다. 눈에는 밝고 어두운 것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카메라에는 밝고 어두운 곳에 따라서 그러데이션이 생긴다. 밝음과 어둠 사이에 존재하는 이 수많은 그러데이션을 찍으면서 읽어야 한다. 빛을 읽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섬세하디 섬세한 자연의 색을 구현할 수 있다.



나는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보다는 창덕궁을 주제로 찍은 사진들이 더 좋았다. 그의 사진은 창덕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보통은 건축물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으면 외부에서 건축물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사진을 많이 찍지만 그의 사진을 보면 건축물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내부에서 밖을 본다면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는 관점인 것 같다.


사진, 즉 포토그라피라는 단어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빛을 다루고 이해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태양이라는 하나의 광원을 잘 관찰하고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세계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대가들은 빛을 장악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카메라를 가지고 놀게 된다.


난 보이는 대로만 찍는다. 스트레이트다. 렌즈도 하나만 가지고 다닌다. 줌렌즈도 안 쓴다. 그러니까 몸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 빛이란 놈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니까. 그러니 한 자리에서 서서 기다리는 건 못 한다. 자주 다니다 보니까 언제 어느 때, 어느 장소에 서 있어야 하는지 알 뿐이다.


나는 나무를 베지 않는 나무장수다. 

어디를 가나 아름드리나무를 만나면 마음이 들뜬다. 


책에서 배병우를 느끼게 하는 가장 강렬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