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좋아하고 즐긴다. 특히나 요즘 같은 가을에는 산이 좋다. 붉게 물든 단풍을 보는 것도 좋고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느낌도 좋다. 사천에 있는 명산은 거의 다 거닐어 보았다. 가장 많이 오른 곳이 각산이고, 그다음이 와룡산, 그다음이 아마도 집 근처에 있는 안점산 봉수대일 것 같다. 그 외에도 봉명산, 송비산, 이구산 등을 가끔 찾는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가족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사천이 아닌 인근 지역의 산을 찾았다. 당분간은 혼자 산행을 다녀야 한다. 아내가 주말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은 평소보다 더 일찍 잠에서 깬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책을 읽었다. 이내 아침이 되었고 날이 밝았다. 우리 가족은 운동이 필요하다. 등산이 유일한 운동이기에 일곱 시쯤 아내와 아이를 깨워 안점산 봉수대에 올랐다. 집에서 안점산 봉수대까지는 왕복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가볍게 몸풀기 산행을 마쳤고,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준비했다.
안점산 산행 후 아침을 먹고 홀로 또 다른 산행에 나섰다. 목적지는 이구산 트레킹 코스다. 원래 이구산 트레킹 코스는 침곡지(선황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선황사, 정자 쉼터, 이구산, 상사 바위, 철탑, 고자(고자정) 고개, 흥무산을 거쳐 한티재까지 총 9.6 Km의 구간이다. 자세한 산행코스는 아래 지도를 참조하면 된다.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다. 날씨도 좋고 하늘도 맑았다. 집에서 선황사 입구인 침곡지까지 차로 이동하고, 침곡지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한티재에서 아내에게 연락하면 아내가 소산마을 입구로 픽업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총 산행시간은 넉넉하게 5시간으로 오후 4시쯤 하산할 계획으로 산행을 출발했다.
산과 들에 핀 들꽃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예전에 몰랐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상관없다. 즐길 수 있으면 행복한 거니까.
이 코스는 처음이다. 침곡지를 돌아 선황사 입구의 언덕을 조금 오르면 주차할 공간이 있다. 선황사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그곳에 주차 후 산행을 시작했다. 선황사까지는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거닐었다. 포장된 임도보다는 산길을 거니는 것이 좋아 갈림길에서 임도를 벗어나 등산로를 따라 거닐었다. 잠시 후 선황사가 나타났다.
선황사 주변에는 단풍나무가 심겨있다. 이곳에서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이구산 트레킹 코스 길을 다시 살피고 산행을 나섰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트레킹 길이 시작된다. 시작은 내리막 구간이라 좋았다.
트레킹 코스의 시작은 소나무 숲이다. 황금색의 솔잎이 떨어져 등산로에 수북이 쌓여 있다. 솔잎을 보고 어린 시절을 떠 올렸다. 지금은 시골 마을도 대부분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지만 예전에는 장작불로 난방을 하고 솔잎을 불쏘시게로 사용했다. 당시에는 떨어진 솔잎을 갈비라고 불렀다. 겨울이 오기 전 장작을 준비하고, 불쏘시게로 사용할 갈비(솔잎)가 떨어지지 않도록 가득 쌓아 두는 것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그 시절에는 산에 이렇게 좋은 갈비가 없었다.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갈비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은 지천에 널린 게 갈비다. 같은 세대라도 아내는 도시에서 자라서 이런 이야기를 모른다. 나처럼 촌놈이어야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잠시 후 수청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늘은 계속 직진이다.
단풍을 빼놓고 가을 산행을 이야기하면 서운하다. 트레킹길에서도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을 볼 수 있다. 오늘은 혼자라서 충분히 단풍을 즐기면서 산을 거닐어도 된다.
다시 오르막 구간이 시작되었다. 이구산 쉼터인 정자까지 오르막 구간이다. 그렇게 경사가 있는 구간은 아니다. 소나무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를 맘껏 마시며 천천히 걸었다.
여기가 이구산 쉼터다. 이곳에서는 사남면과 사천읍, 그리고 정동면이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정표에 이구산이라 표시되어 있지만 이곳이 이구산의 정상은 아니다. 조금 더 가면 이구산 정상 표지석이 있다.
이상한 버섯이 나의 시선을 끌어당겼지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버섯은 함부로 섭취하면 안 된다. 중간에 이정표가 다시 나오는데 누군가 이구산에 대한 표시를 매직으로 반대로 표시를 해 놓았다. 아마도 이구산 쉼터를 이구산 정상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구산 쉼터에 표시된 이구산이라는 팻말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곳이 이구산 정상이다. 해발 370 미터로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다. 대부분 이구산 쉼터나 이곳을 찍고 다시 선황사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의 목적지는 흥무산을 거쳐 한티재까지 트레킹길을 완주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첫 산행이라 길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 이구산 정상부터 상사 바위를 지나 고자정(고자 고개)까지는 잘 알고 있는 코스다. 여기서부터는 능선 구간이라 힘들지 않다. 이제 상사 바위를 향해서 고고...
넓적 바위다. 상사 바위에 오면 쉼터가 있다. 평상이 있어 그곳에서 쉼을 얻을 수 있지만 나는 이곳 넓적 바위가 좋다. 항상 이곳에서 벌러덩 드러눕는다.
이곳이 상사 바위다. 낭떠러지에 바위가 걸터 있다. 아래로는 구룡저수지가 있고, 바로 아래에 우천 바리안 마을을 시작으로 능화숲과 용소계곡까지 내려다볼 수 있다.
상사 바위에 오르면 구룡저수지 아래로 내가 살고 있는 사남면과 사천만까지도 내려다 보인다. 최근 황사로 인해 시계가 나빠서 이날은 멀리까지 선명하게 볼 수 없었다. 바위에 올라서서 바위를 내려다보면 바위에 세겨진 이름을 볼 수 있다. 이 바위에 뭔가 전설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상사 바위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곳 상사 바위에는 전설이 서려 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곳에서 두 번째 휴식을 가졌다. 준비해 간 간식도 먹고,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도 들었다. 어떤 느낌일까?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조금 오랫동안 쉬었다. 그런데 날씨가 수상하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았다. 더 쉬고 싶었지만 오래 쉴 수 없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철탑 구간을 지날 무렵부터 이상한 징조가 보였다.
상사 바위에서 철탑 구간까지는 상수리나무 숲으로 조성된 구간이다. 상수리나무 잎이 등산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좋다.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어 촉감도 좋았다.
문제는 날씨다. 철탈을 지날 무렵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상황에 따라 오늘은 흥무산까지 가지 못하고 고자 고개에서 능화마을 방향으로 하산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철탑을 지나서도 등산로를 상수리나무가 채우고 있다. 가끔 바람이 불 때면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들이 눈이 흩날리는 것처럼 뿌려진다. 몇 년째 계속해서 낙엽이 쌓이고 쌓여서 마치 스펀지를 밟는 것처럼 푹신푹신하다.
잠시 후 다시 소나무 숲길이 나왔고, 데크로 된 계단이 나왔다. 이제 고자 고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날씨 때문에 흥무산까지 계속 산행을 할 수 없었다. 고자(고자정) 고개에서 안종능지가 있는 임도를 따라 능화마을로 향했다. 임도를 걷기 시작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능화마을 버스정류장으로 픽업을 요청했다. 능화마을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흐려졌다. 시간이 두 시를 향하고 있어서 아내와 둘이서 사천읍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중간에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면 산행 중 비를 만났을 것이다. 아쉽게도 계획했던 이구산-흥무산 트레킹길을 온전히 걷지 못했다. 이날 산행을 시작하면서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기 위해 루가 앱을 이용해서 코스를 기록했다. 문제는 철탑이 있는 곳에서 고압 전선 때문인지 GPS가 오류를 일으켜서 이후로 코스가 정상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철탑에서 능화마을 버스정류장까지가 직선으로 기록되었다. 대충 가늠하더라도 7 Km 정도를 걸었고, 이곳까지 3시간 정도 걸었다. 정상적으로 이구산-흥무산 트레킹 코스를 완주했다면 4시간 정도 시간이 예상된다. 다음에는 꼭 그 길을 완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