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이 지나갔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매월 1회 가족 산행을 다니지만 올해 여름은 산행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그 여름도 다 지나갔다. 토요일 밤은 두터운 이불을 찾을 정도로 바람이 서늘했다. 다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아내와 생각이 일치했다. 운동량이 부족하다. 여름 동안 늘어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운동이 필요하고, 가족과 함께 정서적인 소통을 위해서도 주말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매월 1회 가족 산행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을 했다.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하동 금오산에 오를까 생각했다. 그러나 금오산을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아침에 어머니와 산책을 다녀오고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금오산을 다녀오기에는 하산 후 시간이 너무 늦다. 월요일 출근을 생각해야 하기에 늦어도 4시 이전에 내려올 수 있는 산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삼천포 각산이다. 오늘 코스는 4코스 구간이다. 대방사에서 각산산성을 지나 각산 전망대까지 오르는 구간이다. 이 구간은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면서 서포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물과 초코바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대방사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을 시작할 무렵이 정오를 넘기로 오후 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아침에 어머니와 종포 해변을 거닐 때만 하더라도 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아직도 한낮은 여름이었다. 오래간만에 시작한 산행이라 힘들었다.
산으로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즐기면서 올라야 한다. 잠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내려다 본다. 힘든 구간을 지나면 조금씩 삼천포 앞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 삼천포유람선의 투어를 마치고 신수도를 지나 삼천포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오고 있었다.
각산산성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점심 도시락은 챙기지 않았지만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배낭에는 카메라 렌즈와 드론, 그리고 물병 3개와 간식 등이 있어서 무거웠다. 다행이다. 각산산성에서 물병 3개를 다 처리했다. 모두 갈증이 심했던 모양이다. 반대로 걱정이다. 산에 올라가서 갈증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천 바다케이블카 각산 정류장의 휴게소에 매점이 있기 때문이다.
각산산성에 올라 삼천포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위 사진부터 산성의 왼쪽으로는 삼천포 시내와 신수도가 보이고, 산성 정면으로는 소나무에 가려져 삼천포대교는 보이지 않지만 늑도와 창선을 연결한 창선대교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마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휴식 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각산 4코스는 각산산성까지가 힘들다. 그 이후에는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산성을 지나면 사천 바다케이블카가 지나가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삼천포대교를 배경으로 바다케이블카가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냥 앉아서 풍경을 보고만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케이블카를 탑승하는 이용자를 보면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한다. 서서 좌우를 돌아보며 풍경을 감상하고, 인증샷을 남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한번 지나치기엔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각산 전망대에 올랐다. 이제는 봉수대에 오를 수 없다. 이곳에 바다케이블카가 생기기 전에는 봉수대에 올라 삼천포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따로 전망대가 만들어지고, 봉수대에도 막사 복원을 마치고 나서는 봉수대의 보존을 위해 봉수대로 오르는 길을 차단했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몇 컷 찍고, 데크 산책로를 따라 각산 봉수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쉬운 것은 각산 정상 표지석에도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에 좀 더 자주 오를 걸 그랬다. 아쉬움은 드론으로 달랬다. 혹시나 해서 매빅 에어를 챙겨서 올랐다. 배낭에 드론과 조종기, 보조배터리까지 챙겨서 올랐는데 그냥 내려갈 수는 없다.
드론을 날리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드론을 날리는 동안 큰 아이가 내 지갑을 챙겨서 갔는데, 아마도 각산 정류장 휴게소에 갔나 보다. 배터리 2팩을 날리는 동안 보이지 않아서 휴게소로 내려갔다. 시원한 그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졸고 있다. 힘들었나 보다. 나도 휴게소에서 물 한 병을 구입해서 마시고 잠깐 쉬었다.
휴게소 입구에 느린 우체통이 생겼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처음 바다케이블카가 생기고 활성화를 위해 많은 제안을 했는데 그중 하나다. 누군가 우체통 옆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1년이 지나고 생각지도 않은 때에 받은 엽서 한 장,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면 직접 엽서를 작성하면 된다.
다시 각산 전망대로 올랐다. 올랐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아쉽다. 하늘이 너무 예뻤다. 완연한 가을 하늘이다. 구름도 예뻤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좀 더 찍었다. 전망대 측면에 이름 모를 들꽃이 피었는데, 꽃 주변에 호랑나비들이 모여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사진을 취미로 시작하면서 시간을 천천히 즐길 줄 알게 되었다. 흔적을 남긴다. 아니 추억을 남긴다. 하산길에 올랐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맛있는 곳에서 허기를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오늘도 가족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산행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마치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즐겁다. 각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구경하는 것도 좋고, 이렇게 산행을 통해 천천히 즐기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