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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 좋은 사진, 진동선

하나모자란천사 2018. 9. 1. 18:56

 2018년 책 100권 읽기 백 번째 책입니다.


조금 의미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이유가 있다. 매년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조금씩 부족한 상태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 수준에 만족해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서 그랬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분야와 관심분야의 책을 위주로 책을 읽으니 책 읽는 것이 즐거워서 그렇다. 올해의 시작을 사진과 관련된 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는 100번째 책도 사진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이태훈 작가의 '사진으로 떠나는 대한민국 105선' 경상북도 편을 읽어도 좋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전동선 작가의 '좋은 사진'이다. 좋은 책은 오래되어도 좋다. 전동선의 '좋은 사진'이 그러하다. 먼저 그의 에필로그를 살펴보자.




 좋은 사진 그리고 남은 이야기


내게 '좋은 사진'은 두 가지 정의로 기억된다. 하나는 사진을 처음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에 동네 사진관 아저씨가 내게 해 준 말로 "좋은 사진이란 오래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이라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시절에 세계적인 사진가 듀안 마이클이 내게 말해준 "좋은 사진은 비밀이 많은 사진"이라는 말이다.


사진은 근본적으로 '말해질 수 없는 말'이다. 우연과 운명이 매개하여 단 한 번 일어난 시간과 공간의 그림자이다. 그런 사진에 대해서 그 정체를 밝히고 본질을 논하고 정의 내리고 규정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철학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순간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고 하듯이 사진도 '사진은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순간 더 이상 사진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고하고 계속해서 이상적인 사진의 방향을 논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강박증, 또는 오독과 편견을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고약한 지적 성미 때문일 것이다.


좋은 사진은 있다. 본질적으로 모든 사진이 다 좋은 사진이지만 미학적인 관점에서 좋은 사진의 정체는 분명히 있다 좋은 사진을 이끄는 것은 눈과 마음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진의 본질과 정체성의 문제는 열정만 가지고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성만으로 깨우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분명한 철학과 미학을 통해서 논할 때 조금씩 깨닫게 되고, 그 본질에 이를 수 있다.



좋은 사진은 좋은 눈과 마음에서 태어난다. 누구나 정직한 눈과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값비싼 카메라나 멋진 촬영지,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힌 도식적인 촬영 기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진의 본질이 올바른 눈과 마음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책은 카메라의 역사와 탄생이 된 배경부터 상세하게 설명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간의 눈과 마음에 대해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카메라의 탄생에서도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먼저 인간의 눈에서 시작된다. 그다음 카메라 렌즈를 거치고, 마음을 거쳐 세상을 노출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도구 이미지’, 즉 기계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기계 영상은 빛으로부터 탄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의 원리는 빛의 원리이고, 사진의 원리 또한 빛의 원리를 따른다. 사진을 ‘빛 그림’이라고 하는 것도, 카메라의 구조를 ‘암상자’라고 하는 것도 모두 빛의 성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빛의 구조를 분석하여 생성되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결정하는 물리적인 요소는 표면 상태, 선명성, 해상력, 입상성, 선예도가 있다. 그러나 물리적은 요소보다 위에 있는 것은 사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좋은 눈과 마음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일차적으로 사람의 ‘눈’이다. 눈은 감성(마음)과 이성(경험과 학습)을 지배하고 그에 따른다. 사진은 눈이 본 것을 찍는 결과물이다. 눈은 마음의 지시에 따라 세상을 본다. 눈과 마음은 이성이면서 감성이다. 이성은 세상을 인식하고, 두뇌에 의해 인식이 이루어진다. 두뇌는 사유의 공간이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마음의 전달 체계에 의해 찍힌다. 그래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카메라는 눈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좋은 사진을 위한 좋은 눈은 물리적으로 좋은 눈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이성과 풍부한 감성으로 소통하는 눈이다. 이때 올바른 이성이란 ‘앎’이라는 지적, 학습적 영역이며, 풍부한 감성이란 눈이 알아채는 지각적, 감각적 영역을 말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좋은 눈이면 충분하지만, 그로부터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앎’을 향한 좋은 눈과 ‘형’을 향한 좋은 눈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사진도 그렇다. 좋은 사진은 좋은 내용과 좋은 형상을 갖추어야 한다.


갑자기 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해답을 이 글에서 찾았다. 작년에 나는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책을 읽어도 이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나를 온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런데 나를 찾는 과정이 사진이라는 것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진을 시작한 다수의 작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글을 보자.


좋은 마음의 두 번째 요건은 ‘나를 향한 마음’, 즉 자아를 드러내는 마음의 눈이다. 사진을 오래 찍다 보면 좋은 사진은 결국 나의 이야기, 나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이 마음을 따르고, 그 마음이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비로소 자기만의 개성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 진다. 바로 이때가 좋은 마음이 좋은 사진과 만나는 순간이며, 이때 좋은 마음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자아가 드러나는 사진이란 자신만의 시선, 자기만의 프레임으로 찍은 사진이다. 나를 향한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노출, 앵글, 초점을 무시할 수 있다. 또 나를 향한 마음으로 담는 사진이기에 사진의 모든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 사진은 흔들려도 좋을 수 있고, 정작 주요 부분에 초점이 맞지 않아도 눈길을 끌 수 있다. 작가에게 사진은 순간의 감정이다. 아주 짧은 순간 감정의 동요가 일고, 그 동요 속에 사진의 순간이 흐른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이 사진도 늘 순간의 동요 속에 있다. 흔들리는 감정처럼 사진도 감정에 흔들릴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만고의 진리는 사진에도 통한다. 경험과 학습, 지식 없이는 볼 수 없는 세계가 있고, 표현이 불가능한 세계가 있다. 그래서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무엇보다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찍는 것이다. 사진 표현은 각종 경험으로부터 태어난 총체적인 관념의 힘이다. “사진에서는 천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사진이 다른 예술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현실, 삶으로부터 나온다. 경험에 의존한 예술이고, 학습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예술이다. 아이들도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다. 하지만 찍는 것 이상은 표현하지 못한다. 오히려 나이 들어서 사진을 시작한 사람이 더 빨리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이 책은 2009년에 1판이 출간되었다.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진의 본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때문에 사진을 배우는 입장에서 곁에 두고 언제든 꺼내어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이 책을 완독하고 내려놓는다. 그러나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완독 하기까지 약 2주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책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책과 달리 천천히 내용을 곱씹으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반납을 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 미련이 남으면 안 된다. 그래서 책을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