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처음에는 TV 없이 생활하는 것이 불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TV가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TV 다시 보기 서비스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본방을 사수할 필요가 없다. 혹, 본방을 사수해야 할 상황이 생기더라도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가 많기에 이를 이용하면 TV가 없어도 컴퓨터로 TV를 시청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아내와 아이들이 꼭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tvN에서 방영하는 놀토(놀라운 토요일)이다. 프로그램은 전국의 전통 시장을 대표하는 음식을 걸고 노래 가사를 받아쓰기하여 문제를 맞힐 경우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프로그램이다. 나도 가끔씩 보는데 재미가 있다.
지난 일요일 아침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이 식탁에 모여 아이패드로 주말 방영분인 놀토(놀라운 토요일)를 보고 있었다. 이번 방송에 소개된 곳은 경남 의령이다. 방송에서 소개된 음식은 소고기국밥, 의령소바, 망개떡이다. 방송이라 음식을 제공한 상호까지는 알려주지 않으나 각 메뉴마다 유명한 집이 있어서 어느 집에서 제공된 음식인지 알 수 있다.
방송에서 먼저 소개된 음식은 소고기국밥이다. 소고기국밥은 의령 전통 시장 뒤쪽이고 군청 앞에 위치한 종로식당 아니면 오서방 소고기국밥이다. 방송에서 상호를 알려주지 않지만 의령에서 소고기국밥으로 유명한 곳을 콕 찍으면 이 두 곳이다.
두 번째로 소개된 음식은 의령을 대표 음식인 의령소바이다. 의령소바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졌고, 각 지역에 프랜차이즈로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 본점은 의령 시장에 있다.
의령소바의 경우 시장 골목 앞 쪽에 의령 화정소바도 있다. 두 곳다 방송에 수차례 소개가 되었다.
마지막은 방송에서 간식으로 소개된 망개떡이다. 의령 망개떡은 남산떡방앗간이 원조라고 한다. 의령소바 본점 앞에 있다. 혹, 대기행렬이 많으면 주문을 해 놓고 의령소바를 먹고 나오면서 찾으면 된다.
이제 막 아침을 먹었는데 방송을 보다 보니 소고기국밥도 먹고 싶고, 비가 주적주적 내려서 망개떡도 먹고 싶었다. 의령이면 그렇게 멀지도 않고, 원래는 가족 산행에 나서기로 했으나 비로 인해 산행도 취소되었으니 점심은 의령에서 소고기국밥이나 의령소바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망개떡을 사 오자고 했다. 아내도 좋다고 한다. 아이들은 집에 남겠다고 했다. 내가 많이 내려서 아이들은 두고 아내와 둘이서만 다녀오기로 했다.
사천에서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사천 IC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서행을 하면서 나아갔다. 이제는 차를 돌리지도 못한다. 지수 IC에서 빠져서 20번 국도를 타고 의령으로 들어가는 길로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해서 그 길로 의령으로 향했다. 역시나 국도는 물 빠짐이 나빠서 도로 곳곳이 침수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의령까지 무사히 도착을 했다.
의령 전통시장 주차장 건물 3층에 주차를 시키고, 아내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의령 전통 시장으로 향했다. 비로 인해 천천히 서행을 했으나 사천에서 의령까지는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찾을 수 있는 거리였다. 시장 입구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의령 화정소바였다. 아직은 배고 고프지 않아서 시장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의령소바 본점과 망개떡으로 유명한 남산떡방앗간의 위치도 확인했다.
시장은 골목이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되어 있어서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오서방 소고기국밥 집에서 국밥을 먹고 싶었으나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고, 우산은 하나밖에 없고, 아침을 먹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시장기도 덜해서 오늘은 의령소바를 먹기로 했다. 아내는 온소바, 나는 냉소바를 시켰다. 참고로 의령소바는 카운터에서 먼저 계산을 하고 번호표를 받고 빈자리에 앉아 있으면 알아서 음식을 가져다준다.
날씨 때문인지 아직은 대기행렬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잠깐 동안 식당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워낙 유명한 집이라 연예인들도 다수 다녀간 것을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음식이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정갈하다. 온소바와 냉소바는 뜨겁고 차가운 것 외에는 같을 줄 알았는데 맛이 약간 다르다. 설명하기는 힘들다. 먹어 보면 안다. 맛있었다. 다음에는 아이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 나올 무렵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는데,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고 입구에 대기하는 행렬이 밀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난 의령소바 입구에 있는 남산떡방앗간에서 망개떡 2박스를 구입해서 시장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이곳까지 와서 의령소바만 먹고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나는 의령을 자주 왔었다. 예전 직장의 거래처가 있기도 했고, 벽계 캠핑장에 캠핑도 왔었고, 자굴산과 한우산에 산행도 왔었다. 또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생가가 있는 곳이 의령이다. 아내도 그냥 돌아가기 아쉽다고 해서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다녀왔다. 의령 전통시장에서 차로 10~20여분 거리이다.
한옥 건물은 비가 내리는 날 더 운치가 있다고 책에서 본 것이 생각나서 일부러 이곳을 택했다. 그러나 비가 많이 내려서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기 힘들었다. 의령 전통시장에서도 카메라는 차에 두고 내렸다. 대신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가이다. 나는 본디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명품 카메라로 찍는 것이나 아이폰으로 찍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궂은 날씨였지만 아내와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비가 내래는 날이면 예전 아내를 처음 만났던 밀양의 그 집이나 사량도에서 캠핑 중에 만났던 비를 떠올렸는데 이제 의령도 더해졌다. 다음에는 자굴산이나 한우산 산행 후 소고기국밥을 먹으러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