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소확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소확행'이란 '소소하지만(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로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소설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작가의 인지도 때문일까? 아니면 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예전처럼 행복을 얻기가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일까? 아무튼 일상의 소소한 작은 경험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여행이 '가끔 멀리' 보다 '자주 가까이'라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내 주변의 경우만 하더라도 SNS를 통해서 확인되었고, 나를 보더라도 그렇다. 여행에도 '소확행'의 개념이 적용되었다. 가끔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주말에 가까운 곳을 찾아서 즐긴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켄드 겟 어웨어(Weekend getaway)라 한다.
사천이 좋다. 내가 사천이 좋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 위켄드 겟 어웨이와 관련되어 있다. 산, 들, 바다를 가리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곳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사천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모르는 곳이 많다. 아마 나와 같은 이가 많을 것 같다. 때문에 사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좋은 곳을 소개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여름에도 울창한 숲과 나무 그늘, 그리고 계곡이 있는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을 소개하려고 한다.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은 소나무가 많아서 다솔이라 불리는 사찰이 있는 다솔사를 기점으로 시작한다. 어차피 둘레길이라 어디에서 출발을 해도 무관하다. 접근성 측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다솔사에서 출발하면 편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월 1회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한다. 가족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이다. 지난달에는 가족산행을 실천하지 못했다. 오늘이 지나면 6월도 그냥 지나가기에 구름도 없고 바람도 없는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가족산행을 실천하기로 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조만간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도 있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전날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을 했었다. 명품섬 신수도를 둘러보고 올까도 생각했지만 산행이라는 느낌이 없어서 이구산과 봉명산을 고민하다가 봉명산을 택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6월 산행이 시작되었다. 집을 나선 후 사천대교를 지나 서포에서 곤양으로 곤양에서 다솔사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하면 가장 빠른 코스라고 알려 준다. 예전에는 진주에서 하동으로 가는 3번 국도를 주로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일부러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일요일이라 다솔사 주차장에는 차량들이 많았다. 오늘은 봉명산이 아니라 봉명산을 중심으로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5.8Km를 거닐기로 했다.
산행 시작에 앞서 등산로 입구에 있는 지도를 보고 대략적인 코스와 시간 등을 체크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라 3시간 정도 거닌다고 생각하니 2시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늦은 아침을 먹어서 점심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방울토마토와 오이, 물병 하나만 챙기고, 카메라와 드론을 챙겨서 산행에 나섰다.
봉명산은 소나무 숲이 울창해서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코스가 햇볕이 들지 않아 한여름에도 산행을 하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처음 몸이 풀리지 않아 아이들이 투덜거리며 뒤를 따라왔지만 이내 몸이 풀리고 나서는 아내와 나를 앞서서 걸었다. 다솔사를 중심으로 봉명산 둘레길을 몇 차례 거닐어 보았지만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은 처음이고 사전 답사가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내내 울창이 숲이 있어서 한여름 강렬한 햇볕에도 산책을 즐기기에 문제가 없었다.
오늘 산행 코스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다솔사 주차장 - 다솔사 - 휴게쉼터 #1(봉명산 갈림길/ 물고뱅이 둘레길) - 휴게쉼터 #2(약수터 앞) - 보안암/물고뱅이 둘레길 갈림길- 봉안암/이명산 갈림길 - 임도 - 이명산 등산로 -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 편백 쉼터 - 물고뱅이 마을 수변공원 - 무고리 만점 마을 - 주차장 - 봉명정 - 봉명산 갈림길 - 다솔사 - 다솔사 주차장
처음 휴게쉼터 #1에서 봉명산 정상(봉명정)을 코스로 잡지 않고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을 선택했다. 아직 아이들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라 바로 봉명산으로 오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봉명산 정상에 있는 봉명정은 아름다운 정자다. 소나무 숲 사이 높은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사진은 이번 산행이 아니라 지난봄에 이곳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둘레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또다시 휴게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코스를 잡으면 봉명산 정상으로 향하고, 정면으로 가면 약수터로 왼쪽으로 향하면 보안암과 물고뱅이 둘레길 코스이다.
위 사진이 보안암이다. 조그만 암자다. 오늘 가족 산행의 목적은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이다. 쉬지 않고 바로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로 코스를 잡았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면 다시 보안암과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늘은 둘레길 탐방이 목적이라 오른쪽 방향으로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내와 아이들은 앞서 걸었고, 혼자 조용히 산길을 걸었다. 산길 곳곳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등산객 모두가 이쁜 꽃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나도 사진을 몇 컷 남겨 보았다.
사진을 찍느라 가족들에게서 버려졌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걸었다. 다시 봉안암과 이명산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 앞에 벤치가 있어서 쉬고 있었다. 배낭에 먹거리가 있어서 어차피 나를 두고 멀리 가지 못한다.
물로 목을 축이고 오이와 방울토마토, 꽁꽁 얼려간 젤리 등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산행을 완주하기 전에는 오래 쉬지 않는다.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코스를 거닐기 위해서 이명산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조금 걸어가면 임도가 나온다. 별로 반갑지 않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다 보니 햇볕에 그대로 노출이 되었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거니는 길이라 힘들지 않았다. 아카시아 잎을 보고 둘째 녀석이 잎이 달린 곁가지 두 개를 따 왔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잎을 누가 빨리 제거하는지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곧 아내와 큰 아이도 따라 한다. 오늘은 나와 아내가 이겼다.
임도를 따라 거닐다 보면 잠시 후 1005번 지방도가 나타난다. 이곳은 내가 잘 아는 길이다. 곤양면 무고를 지나 하동군 북천면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북천에 레일바이크를 타러 갈 때에 이용하는 길이다.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이 사라졌다. 길을 따라 북천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이명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이 있다.
이명산 등산로를 따라 100미터 정도 오르면 다시 왼쪽으로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이정표가 보인다. 다시 산길이 시작된다. 곳곳에 산딸기나무가 있고, 잘 익은 산딸기가 나의 손길을 부르고 있어서 산딸기를 따 먹었다. 조금 더 나아가면 편백나무 숲이 나오고 주변에 편백 쉼터가 있다. 주변에는 숲에서 편하게 점심을 즐기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편백 쉼터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잠시 쉬었다. 아이들이 가져간 물을 다 마셨다. 아내와 나는 물을 마시지 못했다. 다행히 조금 더 나아가니 졸졸 흐르는 계곡이 있었고, 바위틈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서 그곳에서 땀을 씻어 내고 목도 축였다. 시원하니 물 맛이 꿀맛이었다.
편백 쉼터를 지나고 나서는 무고천을 따라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길 아래로 무고천을 따라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지 않지만 듣는 것 만으로 시원함을 느끼며 산길을 거닐었다. 물소리를 들으며 계속해서 산길을 거닐다 보면 물고뱅이 마을 수변공원으로 내려가는 안내 표지판을 만난다. 말 그대로 수변공원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곳이 물고뱅이 마을 수변공원이다. 신발을 벗고 조성된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잠깐 더위를 식히고 이정표를 확인 후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길을 찾았다.
방향을 잘못 잡아 1005번 지방도를 따라 잠시 거닐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여름 아스발트는 정말 힘들다. 좀 더 걸었으면 아내와 아이에게 원망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주차장 앞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봉명정 정자가 있는 곳으로 올랐다. 이곳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이곳에서 남은 오이와 방울토마토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 쉬었다가 이제 다시 다솔사 방향으로 걸었다. 역시나 오랜 휴식은 산행에 있어 걸림돌이다. 아이들이 마지막 오르막 구간에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조금 더 힘을 내고 걷다 보니 위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게쉼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아이들에게 이곳이 처음 우리 가족이 걸었던 곳이고 이제부터는 내리막 길이라고 설명을 하자 아이들도 산행 처음 걸었던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솔사를 향해 내려갔다.
산행을 마치고 다시 다솔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오후 2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산행이라 중간에 준비해 간 간식을 먹으며 충분히 휴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면 충분한 코스였다. 아이들이 시원한 물이 있으면 첨범 뛰어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주변에는 계곡이 없다.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곳이 있었다. 바로 사천 와인 갤러리이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우선 그곳에서 더위를 식힌 후 점심으로 무얼 먹을지 정하기로 했다. 산행 후에는 항상 맛있는 것을 먹는다. 그래야 다음 산행에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산행을 하기 위한 일종의 당근이다.
완사에는 가끔 들리는 식당 몇 곳이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오늘만큼은 시원한 것을 먹고 싶다고 했다. 원전을 지날 때 '보리밭'이란 식당이 보였다. 보리밥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식단이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오늘은 아이들이 싫다고 했다. 와인 갤러리로 가는 중 아이들은 갈비와 냉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모두 한 곳에서 해결이 가능한 음식이다. 두 곳이 떠 올랐는데 이번에는 지난번 사천 맛집으로 올렸던 국전갈비를 선택했다. 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쉬고 싶었다. 아쉬운 것은 드론을 날리기 위해 매빅 에어와 팬텀 4 프로를 모두 챙겨갔지만 드론을 띄우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내리고 드론을 띄우러 삼천포대교 방향으로 갈까 고민을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몸이 너무 피곤했다. 이러다 드론에 곰팡이 피게 생겼다. 특히나 오늘은 매빅 에어를 배낭에 넣고 산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론을 띄우지 못해서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오늘도 즐거운 산행이었다. 나의 소확행 작은 행복 하나를 오늘도 추억에 담고 돌아왔다. 다음에는 봉암산과 서봉암으로 돌아오는 둘레길을 거닐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