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책 100권 읽기 스무 번째 책입니다.
또 한 권의 소설을 읽었다. 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에세이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본 작가의 소설이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은 1900년대 초반이며, 공간적 배경은 영국이다. 소설은 위대한 집사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일본 작가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풀어낼까?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자 기기즈 이시구로 씨는 1954년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1960년에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그 시대 영국을 상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1989년에 발표되어 그 해에 맨 부커상(영국에서 출판된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그 해 최고 소설을 가려내는 영국의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설을 읽을 때 나만의 습관이 있다. 시대, 장소, 인물, 관계 등을 기록하면서 책을 읽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관계가 정의되면 상상으로 앞으로 어떠한 사건들이 전개가 될 것인지를 상상한다. 가끔은 나의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가 되면 묘한 짜릿함을 느낀다. 이 책도 그러했다. 일단 위대한 집사라는 등장인물의 성향을 파악했고, 그가 짧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소설은 책을 읽는 동안 짧은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소설의 배경이 된 그 시대를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서 1900 ~ 1950년 사이에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어났던 두 번의 큰 전쟁(세계대전)과 영국, 프랑스, 독일과의 역사적인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소설을 통해서도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다. 오히려 역사적인 큰 사건들이 일어났던 배경을 이해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은 늘 보는 것만 보지 말고,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지 말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작은 것들이라도
그것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
끝으로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 소확행을 생각한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꿈꾼다.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고 있나? 아직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책의 마지막 즈음에서 보았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이 책의 제목이 왜 '남아 있는 나날'인지를 알게 해 주는 구절이다. 집사는 지금까지 위대한 집사로의 삶을 살아왔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제 자신의 예전과 같이 위대한 집사로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이전에 모셨던 공작에게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었기에 느끼는 상실감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새로운 주인이 자신에게 휴식을 주었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마지막 여섯째 날에 만난 노인에게서 전해 듣게 되는 말이, 위의 문장이다. 어쩌면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 씨가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나도 이제는 서서히 황혼을 준비해야 한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를 회고하고 그 시절을 부러워하고 늙어 가는 것에 상실감을 느끼지만 남아 있는 시간, 저녁은 아직 끝아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