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묵혀 두었던 책을 책장에서 꺼내었다. 전자책인데 책장에서 꺼내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구입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읽지 않고 있었다. 정재승교수는 '알쓸신잡' 시즌1에서 알게 되었다. 그의 과학과 인문학적 해박함이 좋았다. 그의 책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중권 씨도 좋아했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그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가 너무 싫었다. 그 때문에 이 책도 읽어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묵혀두고 읽지 않고 있었다. 이제 선거도 끝나고 그 이유 때문에 그가 쓴 책을 읽지 않는 내 모습이 너무 편협해 보였다. 이제는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1월 22일 일요일이다. 설날 당일에 양산 장모님 댁으로 이동을 했다. 평소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인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예전에는 하루에 400~500Km씩 운전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겨우 120Km를 운전했는데도 피곤했다. 잠을 청해야 하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설날이면 가족들과 시끌벅쩍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그린다. 모두 다 그렇게 보내지는 않는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아내로 둔 덕분에 처가에 오면 항상 조용하다. 다른 날 같으면 혼자 조용히 가방을 메고 스타벅스로 이동해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설날 당일이라 오픈한 카페도 없었다.
아이패드를 꺼내 들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 끝에 '크로스 1'을 꺼내 들었다. 다양한 주제를 과학자와 시선과 인문학자의 시선에서 풀어가는 방식의 이야기가 좋았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은 좋았다'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우선 나중을 위해 밑줄을 많이 긋는 책이 좋은 책이다. 좋은 구절은 그냥 밑줄을 긋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유를 한다. 이 보다 더 좋은 책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 작가의 생각을 읽고 몰랐던 내용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메모한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독서량이 늘어나면서 어느샌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더하게 되었다. 독서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다시 그 느낌을 찾게 되어 기쁘다. 이 책도 그랬다.
책은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프리쇼, 20세기 소년, 헬로키티, 셀카, 쌍꺼풀 수술, 앤젤리나 졸리, 프라다, 생수, 몰래카메라, 개그콘서트, 강호동 vs 유재석, 세컨드 라이프, 9시 뉴스, 레고, 위키피디아, 파울 클레, 박사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하듯 풀어내고 있다. 누구나 다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소재이고, 세간에 이슈가 된 소재라 관심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