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일 일요일이다. 이제 2019년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알뜰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날씨를 확인했다. 그러나 비가 내린다. 지난주에도 비가 내렸는데 이번 주에도 비가 내린다. 왜 주중에 날씨가 좋다가도 일요일에 비가 내리는 것일까? 일찍 잠에서 깨었지만 다시 잠을 청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없어서 그냥 푹 늦잠을 자고 싶었다. 10시쯤 잠에서 깨었다. 여전히 밖은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뭘 할까? 집에서 책이나 읽을까? 아니면 어제 촬영한 사진들을 편집할까?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도 편집해야 하는데... 그러나 밖을 거닐고 싶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혼자서 산행을 나섰을 것이다. 뭘 할까? 일단 밥을 먹자. 그리고 천천히 뭘 할지 생각을 하자.
비가 내리면 어쩌면 고인물에 반사된 풍경을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집을 나섰다. 처음부터 반영을 촬영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초광각 렌즈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머릿속에 생각한 풍경이 있다. 지난 주말 오후 삼천포항에서 반영 사진을 찍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제대로 된 반영 사진을 담고 싶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대포항이다. 생각했던 풍경을 찾지 못했다. 해안을 따라 미룡항으로 향했다. 지인이 미룡항에서 찍은 반영 사진을 보았기에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미룡항에서도 생각하던 풍경을 찾지 못했다. 딱히 다른 일정도 없다.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삼천포 마리나로 향했다. 이곳도 아니다.
그냥 차를 돌릴까 생각했다. 그냥 빗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실안 해안선을 따라 삼천포로 향했다. 혹 산분령에는 내가 원하는 그림을 찾지 않을까? 그러나 산분령에서도 고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 겨울비라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고 바람이 불지도 않아서 배를 지상에 올려놓은 곳이 없었다.
실안 해안선을 따라 삼천포대교공원으로 향했다.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최근에 마셨던 커피가 내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곳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남은 게 시간이니 급할 게 없었다. 천천히 해안선을 따라 삼천포 용궁시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
대방진 굴항을 지날 무렵 평소와 다른 굴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코너를 돌아 삼천포항으로 들어서고 있었지만 잠시 차를 멈추고 사이드 미러로 굴항의 풍경을 다시 살펴보았다. 왠지 모를 이끌림이 나를 붙들었다. 뒤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차를 후진시켰다.
집을 나섰을 때보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굴항은 만조라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흐린 하늘 때문일까 굴항의 빛이 멀리 있는 바다와 달라 보였다. 고민 없이 사진 한 장을 투척했다. 고인물을 이용해서 반영 샷을 찍기 위해 초광각 렌즈인 어안렌즈를 챙겨 나왔는데 굴항을 다 담을 수 있어 좋았다.
가끔씩 들리는 곳이지만 이 무렵 굴항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은 기억이 없다. 아쉽다. 날씨가 좋았다면 드론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굴항의 풍경도 예쁠 것 같다. 아직 낙엽이 다 떨어지지 않아 하늘에서 보면 단풍이 물든 굴항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올해도 그 기회는 놓친 것 같다. 다음 주까지 낙엽이 남아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굴항 깊숙이 거닐며 곳곳을 사진으로 담았다. 조금 색다른 사진을 담고 싶었다. 아쉽게도 능력이 부족한 관계로 한계가 있었다. 몽환적인 느낌의 사진을 담고 싶었다. 사진을 찍다 보니 렌즈에 빗방울이 맺혔다. 빗방울을 떨쳐내려고 입김을 불었더니 렌즈에 서리가 생겼다. 뷰파인더로 보니 안개가 자욱한 풍경처럼 보였다. 이대로 사진을 담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로 이런 느낌이다.
내친김에 굴항을 돌아 반대편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이곳 굴항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사천 시민이라면 대부분 그 이유를 알겠지만 모르고 있는 이들을 위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방진 굴항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의 진영이 있던 곳이다. 그 뒤 구라량이 폐쇄되어 쇠퇴했던 것을 조선 순조(재위 1801∼1834) 때 진주 병마절도사가 진주목 관하의 창선도와 적량 첨사와의 군사적 연락을 위해, 둑을 쌓아 굴항을 만든 것이다. 당시에는 300여 명의 상비군과 전함 2척을 상주시켜 병선의 정박지로 삼고 왜구를 방어하였다. 이 대방진 굴항을 쌓기 위하여 진주목 관하 73개면에서 수천 명이 동원되어 1820년경에 완공하였다고 전한다.
여기까지는 위키백과에서도 검색되는 내용으로 볼 때 사실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위 내용에는 이순신 장군 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속설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군의 기지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이곳에 거북선을 숨겨 두고 병선에 굴이 달라붙지 않도록 굴항의 물을 민물로 채웠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러나 굴항의 입구는 폭이 약 10m밖에 되지 않는다. ‘충무공 행록’에는 거북선의 크기가 판옥선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판옥선의 크기가 길이 32.8m, 높이가 3.5m, 너비가 12.4m라고 하니 거북선이 출입하고 정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 하지만 당시에는 현재보다 입구가 더 넓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출격시킨 최초의 해전이 사천해전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내용이다. 때문에 굴항의 반대편 언덕 위에는 장군의 동상이 삼천포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돌계단을 따라 장군이 있는 곳으로 올랐다.
장군은 여전히 삼천포 바다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천포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이곳 대방진 굴항이 거북선을 숨겼던 곳이 사실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이 땅에서 우리가 주인으로써 살아가고 있음은 잊지 말아야 한다.
혹 오래된 저 나무들은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들도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 매번 이곳을 찾을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이곳의 역사를 함께했던 나무들이 하나 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존 계획을 세워서 처음 내가 이곳을 보았을 때처럼 풍성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장군님 동상 주변 양지바른 곳에는 가을의 대표하는 소국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으나 알록달록한 색을 뽐내며 나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조금 더 가꾸면 이곳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 같은데 조금 소외된 것 같아서 아쉬움을 느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카메라에 물이 제법 묻어 있었다. 염려스러웠지만 작동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쪽에 평상이 놓여 있고 비를 피할 수 있어 그곳에서 물을 털어내고 바다를 살폈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수도 방향에는 어선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갈매기 한 마리도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고 있었다.
다시 굴항을 돌아나가며 몇 장의 사진을 더 담았다. 주택가를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습관이다. 어머니 연배로 보이는데 습관적으로 할머니라 부른다. 나만 그런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다. 왜일까? 어쩌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닐는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비닐하우스 안이다. 그곳에서 어머니 두 분이 조개를 까고 있었다. 클로즈업 사진을 담고 싶었으나 그러질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얼굴을 담을 필요 없이 조개를 까는 손만 클로즈업해도 충분히 좋았을 것 같은데 용기가 부족했다.
비 내리는 대방진 굴항의 산책은 처음부터 의도된 산책은 아니었으나 뭐 어떠랴 인생을 꼭 계획된 대로만 살아갈 필요는 없다. 자연이 그런 것처럼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몸이 이끌면 이끄는 대로 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풍이 절정일 때 하늘에서 내려다본 굴항의 풍경은 놓쳤지만 하얗게 눈으로 덮인 굴항의 풍경을 담아 보고 싶다. 올 겨울 그런 눈을 볼 수 있다면...
카페에서 사진과 글을 정리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함께 서포터즈 활동을 했던 지인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함께 나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년에도 함께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조금 더 열심히 사천을 알리려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