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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고찰 다솔사를 품은 봉명산 가을 산행

하나모자란천사 2019. 11. 15. 23:54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이 찌는 계절인데, 아내와 내가 살이 찌고 있다. 운동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운동이다. 주말이 아니고서야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월 1회 가족 산행을 하고 있다. 9월 각산 산행을 시작으로 다시 가족 산행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0월은 이런저런 대소사로 인해 가족 산행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1월에도 아내가 당분간 주말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가족 산행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매월 1회 가족 산행을 하자는 규칙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11월의 첫 주에 가족 산행을 실행에 옮겼다.




아내의 형편을 생각해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을 선택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봉명산이다. 나는 몇 차례 봉명산을 다녀왔지만 가족 산행으로 봉명산은 처음이다. 작년 봄 즈음 물고뱅이 둘레길을 걸었지만 봉명산 정상을 찍지 않고 둘레길만 걸었다. 이번에는 봉명산 정상을 찍고 보안암까지 둘러오는 코스를 생각했다. 이 코스는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고,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도시락은 따로 준비하지 않고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 아내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간단하게 마실 물과 사과 2개, 오이만 챙겨서 산행을 나섰다. 오전 9시쯤에 다솔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우리의 목적인 산행이었기에 바로 등산로로 들어섰다. 등산로 입구의 통제소의 인적사항을 등록하는데 오늘 우리 가족이 두 번째 등산객이라고 했다.



오늘도 두 아이들이 선두로 나섰다. 작년 물고뱅이 둘레길을 걸었기에 갈림길까지는 길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5, 6학년이 되면서 자기 주관들이 생기면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하지 않고 따로 주말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월 1회는 가족 산행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큰둥 하지만 막상 산행을 시작하고 나면 아이들도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작년 봄 아니면 여름 즈음 이곳을 찾은 후 일 년 만인데 그 사이 등산로 초입 구간이 포장이 되어 있었다. 다솔사 입구에서부터 뭔가 달라진 듯한 느낌도 있었는데 딱히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내가 산을 찾는 이유는 자연 그대로를 느끼기 위함이지 걷기 편하기 위해서 산을 찾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산행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나 봉명산을 산행할 때는 천천히 거니는 것이 좋다. 주변을 살피고 거닐다 보면 다솔사에서 걸어 놓은 좋은 글귀를 만날 수 있다. 평소 책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 글들이지만 산행 과정에서 글을 읽다 보면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기도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



나는 어떠한 사람일까?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내가 되어 보련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 자리를 벗어나고서도 이 글귀를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가족들을 따라 올라갔다. 갈림길에서 멈춰 있던 아이들이 봉명산으로 오르는 길을 묻더니 아빠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지도 않고 바로 봉명산 정상으로 향했다. 여기서 정상까지 약 400 미터 구간이 경사구간이다. 이 구간만 오르면 된다. 때문에 봉명산은 평소 산행을 하지 않던 분들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구간은 소나무가 빼곡하다. 왜 봉명산에 자리 잡고 있는 천년고찰인 절의 이름이 '다솔사'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오르다 보니 아이들과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 천천히 순간을 즐기며 산을 올랐다. 간간히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 빛을 사진에 담아 보고 싶었으나 담지 못해 아쉬웠다.



역시나 아빠를 생각하는 것 둘째 녀석이다.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었는지 기다렸다고 했다. 그래도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어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마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둘째 녀석도 느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봉명산 정상에 오르면 높은 소나무 사이로 높은 정자가 있다. 소나무 꼭대기 높이에 정자가 세워져 있어 정자에 오르면 주변 풍경을 막힘 없이 볼 수 있다. 



아쉽게도 가을 황사로 인해 멀리 볼 수 없었다. 준비해 간 사과와 오이를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깐 쉬는 동안 드론을 띄웠다. 지난 사천 에어쇼 행사 기간에 아이들이 드론 조종을 체험했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게 드론을 가르쳐도 되겠다 생각했다. 큰 아이에게 조종관을 잡아 보라고 했으나 겁을 내었다. 



둘째 녀석은 거침이 없었다. 역시나 경험이 중요하다. 금방 적응해서 드론을 이리저리 날렸다.



그 사이 다른 일행이 정자에 오르고 있어서 우리 가족은 자리를 내어주었다. 봉명산 정산 표지석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고 하산을 시작했다. 올랐던 길로 이대로 내려가기에는 산행이 너무 아쉬웠다. 



지금 내려가서 점심을 먹기도 그랬다. 헬기장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다솔사로 회귀하지 않고 보안암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점으로 내려갔다가 봉명정을 거쳐 다솔사로 내려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오늘 우리 가족이 걸었던 코스는 트랭글이라는 앱으로 기록을 남겼다. 깜빡 잊고 처음부터 기록을 하지 않았지만 대략 5Km 정도의 거리이며, 해발 200 미터 높이에서 시작해서 봉명산 정상이 해발 408 미터로 대략 200 미터만 오르면 되는 힘들지 않은 구간이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기 때문에 총 산행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이고,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산행 시간은 2시간 정도 걸렸다.



보안암에서 만점으로 내려가는 코스는 나도 처음이었다. 새로운 코스로 산행을 할 때는 사전에 코스를 탐색하고 산행을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만점을 내려갈 때만 하더라도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작년 물고뱅이 둘레길 코스와 겹치는 구간임을 알 수 있었다. 




작년 이 맘쯤 산행을 할 때는 단풍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더위가 늦게까지 기성을 부린 탓일까? 가을의 시작이 늦었고, 단풍도 늦었다. 그럼에도 가을은 어느새 깊숙이 내려앉아 있었다. 



만점에서 가을을 보았다. 천천히 거닐다 보니 봉명정이 보였다. 안심을 했다. 작년 물고뱅이 둘레길을 거닐면서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했었기 때문이다. 봉명정을 지나 다시 다솔사로 복귀했고, 그곳에서 11월 월 가족 산행을 정리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주차장으로 바로 향했고, 나는 다솔사에 잠시 들러 사진을 찍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밥 먹으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더 많은 사진을 담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이들을 생각해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이들이 투덜투덜하면서도 가족 산행을 따라나서는 이유가 있다. 산행 후에는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기 때문이다. 다솔사 주변에도 맛있는 음식점이 있지만 이번에는 서포에 있는 '사천 할매 콩나물국밥집'으로 갔다. 



가끔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으면 송비산 산행 후 완사에 있는 콩나물 국밥집을 가거나 아니면 이곳에 온다. 콩나물 국밥만 생각하면 완사가 더 나은 것 같지만 이곳은 특별함이 있다. 이번에도 고민 없이 콩나물 국밥과 석쇠 불고기 그리고 계란말이를 시켰다. 점심을 먹은 후 봉명산 가을 산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