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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돌자 동네 한 바퀴 - 통양 조금널

하나모자란천사 2019. 11. 9. 10:46

십 년이면 강산도 바뀐다. 그 말을 실감한다. 이제는 이 말을 꺼내어도 어색할 정도는 아니다. 곧 있으면 내가 태어나고 다섯 번의 강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곳 사천에 뿌리를 내린 지 10년이 지났다. 그사이 사천도 많이 변했다. 대한민국의 항공산업 메카로 자리매김하면서 항공산업단지가 점점 더 생겨나고 있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사람의 유입이 증가하고 도시는 성장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바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성장을 위한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혜택을 보는 이가 있는 반면 소외를 당하는 계층도 생긴다. 얻는 것도 생기고 잃는 것도 생긴다. 오늘은 잃게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마도 그중 하나가 추억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을 추억. 그 추억을 담아서 보관할 수 있다면 누군가 떠 올리고 싶을 때 꺼내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산업단지를 조성하다 보면 작은 시골 마을들은 정책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마을이 옮겨지기도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도심에서의 이주나 이사는 더 나은 보금자리를 찾아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주나 이사에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이주나 이사는 단순하지가 않다. 조상 대대로 삶을 이어온 곳을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의 이주나 이사는 언제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댐을 건설하면서 마을이 수장되는 경우나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마을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기억에서도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처음부터 없었던 곳이 되어버릴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힌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곳이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던 곳이라면 어떠할까?



사천에도 그런 곳이 있다. 처음 사천에 내려왔을 때 방지리 일대가 그랬고, 지금은 용현면 종포 일대에 항공산업단지로 인해 사라진 마을과 MRO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사라질 용당리 등이 그러하다. 보금자리야 보상을 통해 새로운 곳에 마련할 수 있겠지만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 고스란히 남아 있는 우리의 추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라지기 전에 다른 매체를 통해 기록되고 남겨진다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조금널 마을에 대한 기사를 기획했다.



서론이 길었다. 퇴근 후 가끔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바닷가로 산책을 나선다. 사천이 좋은 이유다. 차로 5분이면 산도, 들도, 바다도 볼 수 있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바다다. 그냥 바다가 좋다. 어쩌면 바닷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지 모른다. 최근 며칠 사이 감기몸살로 인해 몸 컨디션이 최악이지만 그래도 산책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발걸음을 옮긴 곳이 댓섬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해서 일몰을 담고 싶었지만 11월이 시작되면서 해가 많이 짧아졌다. 벌써 해는 지고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썰물이라 바닷길이 열려있었다. 댓섬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처음이다. 맞나? 아닌가? 그렇다. 처음이다. 지금까지 꽤 자주 이곳에 왔고, 이곳을 지나쳤지만 댓섬으로 건너가 본 것은 처음이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내리지 않았고 밀물까지는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어서 천천히 댓섬을 둘러볼 수 있었다. 댓섬이 큰 섬은 아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작은 섬이다. 혼자 조용히 일몰을 즐기며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아 SNS에 올렸다.



SNS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 내가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 댓글과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습관처럼 SNS를 확인했다. 댓섬과 관련해서 올린 글과 사진에 누군가 댓들을 달았다. 댓섬에서의 추억이 있는 분이다. 이곳 댓섬 근처에 작은 시골 마을이 있다. 덕분에 마을의 이름을 알았다. ‘조금널’이라는 마을이다. 사천시 SNS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다 함께 돌자 동네 한 바퀴'라는 테마로 사천에 있는 마을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언젠가 한 번 거닐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마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다시 댓글을 남겼다. 혹 이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추억이 없는지 물었다.



답변이 왔다. 어릴 적에 살던 곳이라고 했다. 종포 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해안을 따라 찻길이 생겼지만 예전에는 길이 없었다고 한다. 이곳 모두가 바다였다고 한다. 마을 앞 억새풀로 어우러진 곳도 바다였다고 한다. 바로 사진으로 보는 저곳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여름 썰물 때가 되면 댓섬으로 건너가 목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발로 더듬어가며 소라와 피조개를 잡던 추억이 있다고 했다. 댓글을 읽고 놀랬다. 나도 비슷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잠깐 언급했지만 나도 어린 시절을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여름철이 되면 큰 방아섬에 건너가 그곳에서 발가락 감각으로 소라와 피조개를 잡았던 추억이 있다. 아버지는 체격이 좋아서 쉽게 잡아 올렸지만 어린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어쩌다 건져 올리기라도 하면 어찌나 즐거웠던지... 지금은 경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에 그 추억이 소중한 것 같다. 덕분에 잊고 있었던 추억을 소환했다. 잠시나마 즐거웠다.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11월 사천시 블로그에 올릴 원고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널’ 마을을 취재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부터는 남들과 조금 다른 주제로 글을 올리고 싶어서 사천시 관내에 있는 마을들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항공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사라질 마을을 취재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발걸음은 다시 댓섬과 조금널 마을로 향했다. 가을 황사 때문에 공기가 맑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을 분위기를 느끼며 마을을 거닐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마을을 거니는 동안 골몰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를 반겨준 것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녀석도 오래간만에 보는 사람인지 경계심이 많아서 사진 한 컷 담는 것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미 마을에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살 수 있는 집이었으나 대부분 비어 있었다. 버려진 TV, 냉장고 등을 보며 이곳이 곳 사라질 마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을을 거닐며 생각했다. 대부분의 바다가 있는 어촌 마을이 그러하듯 이 마을도 그리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을 그런 마을이었다. 산업단지 조성이 아니었다면 사라질 마을은 아니었다. 씁쓸했다. 내가 그러할진대 이곳에서 추억이 있었던 분들은 어떤 느낌일까? 고향을 잃는다는 것. 그것은 추억을 잃는 것이다.



가을 햇살이 좋아서 천천히 마을을 거닐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경운기 한 대가 보였다. 저 상태로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 여기저기 녹슬고 바퀴는 바람이 빠지고 갈라져 있었다. 사람이나 사물이다. 버려진다는 것은 모두 상처다. 



누군가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길 곳곳은 측량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곧 기계들에 의해 밀리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집집마다 사람이 없는 집이나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공터에 홍고추를 말리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반가웠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골목을 돌아 천천히 마을을 거닐었다.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바다도 바라보았고 마을도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지난 추석 명절이나 다가올 설 명절에 이곳에 올라 지금의 내 모습처럼 옛 추억을 떠 올리는 이가 있을 것 같다. 비록 나의 추억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을을 돌고 또 돌았다. 이후 몇 차례 이 마을을 다시 찾았다. 우연히 지나는 길목에서 조금마을 주민쉼터를 발견했다. 흔히 시골마을의 경로당 같은 곳이다. 가끔 고향집에 들렀는데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면 주민쉼터인 경로당으로 향한다. 노령 인구가 많은 시골 노인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그런데 조금마을의 주민쉼터에는 '조금주민생존대책위원회'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아니 추억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많은 얘기가 오갔을 것이다. 분쟁과 다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댓섬을 지날 때에는 댓섬은 잠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사진을 찍은 곳마다 내가 거닐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몇 년 전 촬영되었을 것 같은 위성사진으로 조금널과 주변을 보았다. 지금은 갈대만 무성한 저곳이 원래는 경작지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다시 10년이 지난 후에는 저곳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많은 것을 담고 싶었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조금널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마을을 거닐며 남겼던 사진으로 조금널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