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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8 - 공명의 시간을 담다, 구본창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하나모자란천사 2019. 10. 27. 07:00

 2019년 책 100권 읽기 여든여섯 번째 책입니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워 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진과 관련된 책과 잡지를 읽었다. 멋도 모르고 사진예술이라는 잡지를 읽었는데 어려웠다. 내가 읽을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 그 잡지에서 구본창이라는 이름을 자주 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이미지는 내게 어려운 사진을 찍는 작가로 남아 있다. 이후 도서관에서 사진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구본창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내가 피했다. 아직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제법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사진과 관련된 책도 백 권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은 내 수준에 맞는 DCM이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잡지와 다른 책을 통해서도 종종 듣고 있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그를 만나 보기로 했다. 그나마 조금 쉬울 것 같은 책을 골랐다. 구본창,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그의 ‘공명의 시간을 담다’라는 책이다.




사진가는 쉬엄쉬엄 생각날 대 한 장씩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숨을 쉬듯이 그것으로 세상에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두 번 다시 반복될 수 없기 때문에 그때를 놓치면 영원히 재현할 수 없는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항상 카메라를 들고 렌즈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사진을 찍으라


함부르크로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찍어 놓은 사진들을 꺼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골라낸 것들을 네 장씩 묶어서 그 안에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학 생활 동안 내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에세이처럼 구성한 것이다.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는 부패하고 사라지고 재생되고 순환한다. 그리고 그 시간과 삶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와 흔적이 남는다. 나는 이 자국들을 더듬어 의미를 찾아내고 싶었다. 단순한 풍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와 생명의 흔적을 발견하고 싶었다. 사진이라 원래 피사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지만 나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렌즈 너머로 펼쳐진 화폭 안에 시적인 함축을 담으려 했다.


아마추어 사진에서 흔히 발견되는 공통점으로 너무 소재에 의존하는 점을 들 수 있다. 피사체와 사진의 외형적 등가 이상의 것을 보여 주지 못하고 단순히 대상물을 보여 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대상의 표면에 사로잡혀 그것만 찍으려 하면 표면적인 아름다움 이상은 표현할 수가 없다. 어떤 대상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사진가라면 찍으려는 대상물에서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낸다. 내가 찍은 사진에는 나의 감성과 자아가 반영되어 있다.  바다를 찍으려 한다면 그 바다는 나에게 특별한 것이고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그 순간 촬영자와 대상물 간에 긴장과 교감이 발생하고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더 이상 교수에게 주제를 부여받는 학생도 아닌 프로 사진가는 스스로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가 작업의 시작이다. 그러니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면 평소에 정보를 많이 쌓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찍을 것인지 결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모으기 위해 사진가는 항상 세상에 눈과 귀를 열어 두어야 한다.


사진은 일종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어를 해독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듯이, 사진이라는 시각언어를 해독하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한 장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가들이 사용하는 영상어법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사진은 예술이기에 다른 학문의 영역과 달리 주관적이고, ‘대상과 대화하려는 열린 마음’이 우선한다.


분명 외로움의 순간은 있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그것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독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목말라할 내면의 호기심과 갈등을 충족시키기 위한 과정이며, 그것이 가져온 결과로 인한 환희를 위해 감내할 수 있는 순간이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작가는 그동안 자신이 담았던 다양한 사진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비누, 탈, 백자, 등 다양한 소재를 사진에 담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소재의 외적인 형태보다 그것의 내면에 흐르는 것이었다. 백자를 예로들면 백자의 외형적 형태보다는 백자의 단아한 감성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백자를 단순한 도자기가 아닌 혼을 지닌 것으로 여기고 마치 인물을 찍듯이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몸은 몰라도 머리로는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구본창 작가의 책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진에 대해 기초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월간 사진예술을 통해 그의 깊은 작품을 보았으니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나도 제법 사진에 대한 내성이 길러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