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책 100권 읽기 여든한 번째 책입니다
기자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의 저서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인용하여 사진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진은 정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답이 있는 것도 아니죠. 맞는 답이 없기 때문에 틀린 답도 없고, 단지 다른 답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최선의 결과는 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그런 최선의 결과를 놓쳤을 때 자신만 고릴라를 보지 못한 듯한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왜 난 저 생각을 못했지? 왜 저걸 못 봤지? 왜 저곳에 자리를 잡지 않았지? 왜 렌즈를 바꾸지 않았지?
// 제목짓기
제가 사진을 마감할 때 하는 놀이 중에 ‘제목 짓기’가 있습니다. 사진과 별 관련이 없다고요? 여러분도 사진에 제목을 붙여 보세요. 재미있게. 저는 사자성어 놀이를 합니다. 그래서 나온 제목들이 ‘어린사색’, ‘수능낭만’, ‘베컴축구’ 등이죠. 데이비드 브룩스는 <보보스,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에서 “창의적인 사람들은 지루한 규칙을 깨뜨리고 싶어 하지만 보보스들은 일과 놀이를 결합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보보스는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입니다. 한번 곱씹어 볼 말이죠.
수전 손택의 사진과 글을 볼 때가 된 것 같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빠질 때 총을 발사한다. 그렇지만 향수에 젖을 때면 사진을 찍는다”라고 말했다.
// 무엇을 찍을까?
혹시 카메라를 앞에 두고 ‘뭘 찍지?’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이건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뭘 먹을까?’하는 고민보다, ‘뭘 해 먹지?’하는 주부들의 걱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뜬금없이 듭니다. 사진은 그냥 있는 것을 찍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시선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사진은 숨바꼭질입니다. 사진은 생활의 발견이자 일상에 대한 관찰과 예측입니다. 우리들은 똑같은 도심 혹은 그 어떤 곳이든 비슷한 환경 속에 있지만,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궁한 가능성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유럽의 멋진 도시를 걸어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의 출근길에서, 집에서, 골목길에서, 화장실에서,... 어디서든 그동안 바라보았으나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궁리해 본다면 거기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일종의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진 구부림 - 무엇을 찍지가 아니라 어떻게 찍지가 문제가 된다.
한겨레 곽윤섭 선배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매그넘 코리아에 참가한 마틴 파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다섯 장씩 섞은 다음다음 강연회에 들고 가 마틴 파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골라내라고 하니 곽 선배의 사진을 많이 선택했다는 겁니다. 요는 “사진 한두 장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즉 테마를 알지 못하고 사진을 보면 그 사진이 좋은지 나쁜지 알 길이 없다는 거죠. 수전 손택이 말했던 ‘하나의 테마’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에 포토저널리즘이 성공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틀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