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Story

#0317 - 한번은

하나모자란천사 2019. 8. 29. 23:16

 2019년 책 100권 읽기 예순다섯 번째 책입니다


카메라는 일종의 눈이다.

그것도 앞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눈.

앞으로는 사진을 찍고,

뒤로는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그림자 같은 윤곽을 그려낸다.

그렇다. 앞으로는 피사체를 바라보면서,

뒤로는 이 피사체를 포착해야 하는 그 근거를 바라본다.

카메라는 사물들과 동시에 그 사물들을 향한 (사진가의) 바람을 

보여주는 셈이다.




무엇을 찍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풍경이 지닌 서사의 힘을 굳게 믿는다.

도시, 황야, 아니면 산맥, 혹은 바닷가든

풍경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외치고 있다.

풍경이 주인공이 되고, 그 속에서 서 있는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된다. 

마찬가지로 난 소품들이 품고 있는 서사의 힘도 굳게 믿는다.

사진 속 한쪽 구석에 무심하게 펼쳐져 있는 신문은

그 어떤 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다!

배경 속에 보이는 광고판도!

사진 모서리에 살짝 잘려나간 모습으로 서 있는 녹슨 자동차!

누군가 방금 벌떡 일어선 게 분명해 보이는 의자 하나!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책, 제목이 절반쯤 보이는 책 한 권!

보도블록 위에 버려진 텅 빈 담뱃갑!

아직 스푼이 들어 있는 커피 잔!

사진 속에서 사물들은 즐거워 보일 수도, 슬퍼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우스워 보이거나, 비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홀로 남겨진 옷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진에서 옷은 가장 흥미진진한 소재다.

어린아이의 발목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양말 한 짝!

뒤에서만 눈치챌 수 있는, 남자의 셔츠 칼라가 살짝 뒤집어져 있는 모습!

땀으로 얼룩진 옷!

옷에 진 주름들!

해진 부분에 헝겊을 대고 꿰맨 옷!

단추가 떨어진 옷!

방금 다림질을 한 옷!

한 여인의 인생사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역사가 담겨 있는 옷!

한 사람의 인생 드라마가 그대로 묻어나는 외투!

옷은 사진 속의 온도를, 날짜와 시간을, 전시인지 평화로운 시절인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포토 에세이 또는 사진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면 이 책처럼 시작하고 싶다.

지금까지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 만나고 헤어졌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여전히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기억에서 완전히 잊힌 사람도 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기록으로 남긴다면 좋을 것 같다.

꼭 책을 내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책을 염두하거나 포토 에세이를 염두한다면 전경, 중경, 클로즈업을 함께 담도록 하자.

가능하면 촬영 위치를 바꿔가며 사진을 담아 두자.

그래야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핵심적인 문장만으로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의 책을 보면서 사진은 일상에서 찍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으며 흑백 사진이 주는 매력을 알게 되었다.


좋은 사진 한 장 보다는 시간의 연결을 위해서는 여러 장의 사진이 더 효과적이다.


영화감독인 작가는 업무상 유럽과 미국을 자주 오간다. 여행은 사진의 좋은 소재다. 그렇다고 모두 작가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감독이기 때문일까? 세상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그리고 소소한 주변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결국 노력이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란 속담이 있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땐 

이 말이 꽤 명쾌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적어도 사진에 있어서 이 말은 옳지 않다.

사진에 있어서 한 번이란,

정말로 오직 단 한 번을 의미한다.


- 빔 벤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