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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넘어가는 시점에 거닐어 본 사천읍성 - 맥문동 꽃 길을 거닐다

하나모자란천사 2019. 8. 21. 06:00

입추도 지나고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로 들어서면 확실히 선선함이 느껴집니다. 토요일 오후 점심때를 놓쳤습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집을 나와서 굶기는 그렇고, 먹어야 하는데 가볍게 허기만 채울 수 있는 게 필요했습니다. 이번에도 사천읍시장에 들러 물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가볍게 먹으려 했는데 시장 인심이 후한지라 가볍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주말을 맞아 시골 어머니댁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기 전에 소화도 시킬 겸 사천읍성(수양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수양공원은 사천읍에 나왔다가 시간이 남으면 가끔씩 들러 산책을 즐기는 곳입니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면 가장 더운 시간대입니다. 괜히 산책을 하려다 땀범벅만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사천고등학교가 있는 쪽의 주차장을 이용해서 수양공원에 향했습니다.



태양이 어찌나 뜨거운지 백일홍(배롱나무)도 꽃이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른 태양을 피해 나무 그늘로 들어갔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니 살 것 같았습니다. 도심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은행나무 근처의 벤치에는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 아이들과 정자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 오랜 친구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 숲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고 있는 부부, 정자나무 아래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어르신 한 분. 저들도 나처럼 도심에 이런 공원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겠죠.



그렇게 가볍게 거닐다 보니 덥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나무 그날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숲길을 따라 산책을 즐겨도 되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침오정(팔각정)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침오정 옆의 성벽을 따라 대나무 숲길을 걸었습니다. 조금 거닐다 보니 산성사와 달마사가 나왔습니다. 이곳으로도 사천읍성으로 오르는 통로가 있습니다. 사천공설운동장 방향에서는 이 통로를 통해 사천읍성으로 진입하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더 나아가려 했으나 앞쪽으로는 사천읍성 성벽 복원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성벽 사이로 뚫려 있는 길을 사천읍성으로 진입합니다.



이제 산책로 따라 천천히 숲 길을 거닐기 시작합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들은 춤을 추고 있었고, 나무들의 춤사위에 따라 햇살이 숲을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걸어 보았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평소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들의 춤사위들이 바닥에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여유가 부족했나 봅니다.



흙 길을 거닐고 싶어 방향을 꺾어 숲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보랏빛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맥문동 꽃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기가 맥문동 꽃이 피는 시기인가 봅니다. 최근 온라인 사진동호회에 올라오는 사진들 중에 경북 성주의 맥문동 군락지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맥문동 꽃을 이곳 수양공원에서 만났습니다. 언제 조성했는지 모르지만 수양공원에는 지금 맥문동 꽃이 숲 길을 따라 피고 있습니다. 사천초등학교 있는 쪽으로는 꽃이 많이 피었고 위쪽으로는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맥문동 꽃길을 더 거닐고 싶어 다시 사천초등학교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걸어 내려갔습니다.



보이시죠? 숲길을 따라 이렇게 맥문동이 잘 자라고 있지만 위쪽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아래쪽에만 꽃이 피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수양공원에서 한동안 맥문동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맥문동이 세력을 다 할 쯤에는 꽃무릇이 수양공원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겁니다.



정자나무를 뒤로 저 멀리 사천읍 보건소와 평생교육원이 보입니다.



나무 숲 사이로 사천초등학교의 노란 건물과 분홍색의 신진맨션도 보입니다. 신진맨션에 사는 분들은 모두 상남자. 남자는 분홍. 아마도 그래서 건물도 분홍색으로 칠한 것이 아닐까라는 혼자만의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정자나무 아래에서 나도 잠시 쉬어갈까 했는데 어르신 한 분이 명상을 즐기고 있어서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래에서 자연이 그리는 그림을 즐겼습니다.



몇 시간이 주어져도 제대로 된 그림 한 장 그릴 수 없는 나에 비해 자연은 바람에 따라 다른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몇 해 전에 읽었는데 책을 읽고도 깨우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깨우치는 것 같습니다. 비록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갈지라도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조금만 다르게 보면 보이는 모든 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무 위를 오르는 이름 모를 넝쿨 줄기를 보는 것도 아름답고,



잘린 나무둥치 위에서 새롭게 생명을 내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보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수양공원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때로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보다 부분적으로 보이는 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수양공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곳이 남았습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아직은 짙은 녹색이지만 조만간 이곳은 노란 단풍으로 물이 들겠지요.



그리고 이곳입니다. 이곳에 오면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우리는 몇 시간도 서 있지를 못하고 눕는데 저들은 얼마나 눕고 싶었을까요? 누가 일부러 이렇게 조성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저들도 가끔은 누워서 편하게 쉬고 싶지 않을까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모든 게 도심 속에 공원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최근 집을 대신 구해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숲세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데 사천에 살면서 내가 있는 곳이 숲세권이니 뭐가 더 부럽겠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