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ife/탐구생활

언제라도 뚝딱 내어 오는 인생 최고의 어머니표 시골밥상

하나모자란천사 2019. 8. 4. 06:00

주말이면 가끔 시골 어머니댁에 들린다. 어머니댁이 가까이 있어 좋다. 성남에 있을 때는 명절이 아니면 어머니를 뵙기가 힘들었다. 벌써 사천에 정착한 것이 14년째다. 어쩌면 사천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도 어머니 때문이다. 늘 잔병이 많았던 어머니는 큰 수술만도 몇 차례 받았다. 어머니 당신께서도 지금까지 목숨을 붙이고 있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하실 정도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그래서 고맙다. 어릴 적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20살이 되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있을 무렵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평생 병원 문턱 한 번을 넘지 않았던 아버지셨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늘 병원 문턱을 넘나들었다. 걱정이 되셨던 아버지는 막내인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어머니께서 살거라라고 말을 자주 했다.




그렇게 말했던 아버지는 지금 없고 병원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었던 어머니는 여전지 건재하시다. 지금도 병원 문턱을 수시로 넘나드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좋다. 두 분 중에서 한 분이라도 오래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어머니 본인을 위해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가 좋다. 아무 때고 사전에 연락이 없어 방문해도 그리운 어머니 밥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내의 밥상에 길들여졌지만 그래도 가끔은 어머니의 밥상이 그립다. 아내의 밥상과 어머니의 밥상은 다르다. 분명 내 입맛도 예전과 달라졌으나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밥상을 대하면 다시 예전의 입맛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가끔 어머니의 밥상이 생각나면 그냥 시골 어머니댁으로 향한다. 5월 온 가족이 어머니댁에 들렀을 때 어머니께서 내어주신 밥상이다.



사전에 미리 연락하고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출발할 때 혹 집에 계시지 않을까 봐서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지금 출발한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올 것을 아셨는지 아니면 항상 아들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뚝딱뚝딱 몇 번의 손길을 거친 후 어머니표 밥상을 내어주신다.



이런 매운탕과 갈치조림 등은 아내의 밥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고 아내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는 먹기 힘들다. 이해한다. 이것 때문에 아내에게 불만이나 서운한 적은 없다. 다른 것들로 충분히 훌륭한 밥상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6월 어느 주말은 혼자 어머니댁을 찾았다. 비가 많이 내렸던 날이다. 회사에서 워크숍이 있어 근처에 왔다가 어머니댁에 들렀다.



그냥 있는 반찬으로 상을 차려 주셔도 되건만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매운탕이나 갈치조림을 꼭 끓여 주신다.




어쩌면 이 맛이 그리워 어머니댁을 자주 찾는 것인지 모른다. 가끔 어머니표 시골밥상을 SNS에 올리면 나보다 연배가 많은 지인들이 부럽다고, 당신도 어머니 밥상이 생각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조금은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어머니께 고맙고 그분들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한다. 어머니 연세면 당신 혼자 밥상을 차리는 것도 귀찮을 텐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것이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아들이나 손주들 모습을 자주 뵈어주는 것을 좋아하시기에 자주 찾는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매번 다른 것들을 준비해서 밥상을 내어주신다.



아들이 불쑥 찾을 때마다 이렇게 뚝딱 내어 오는 밥상이 내게는 그 어떤 맛집 요리보다 더 맛있다. 내 인생 최고의 밥상이다. 언제까지 어머니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을는지 모른다. 요즘 들어 부쩍 주름이 더 늘었고, 밥상을 차리는 것도 힘에 부쳐하는 것이 느껴진다. 어제도 어머니댁을 찾았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밥상을 내어 주셨다. 잠깐 자리를 비운 동안 맛있게 점심을 먹고 깨끗이 밥상을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끝냈다. 이제는 밖에서 밥을 먹고 어머니댁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어머니표 밥상을 받는 것은 내게 큰 행복이지만 이제 그 행복을 조금 줄여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