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책 100권 읽기 마흔아홉 번째 책입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작가이자 기자가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제목에서 끌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게다가 작가는 사진가다. 신문사에서 20여 년간 사진기자를 했다. 때문에 작가가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다. 작가는 기자 시절 두 번의 개인전을 했고, 기자를 그만둔 뒤 두 권의 사진집을 냈다. 역시나 기자의 사진은 좋았다. 그러나 그의 글은 더 좋았다. 천천히 그의 사진과 글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고 행복했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사진 찍는 일에만 안달하지 말고 지금까지 찍어놓은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 그 속에 사진 찍는 순간 미처 깨닫지 못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것이고, 자기 이야기마저 읽어내지 못하는 사진은 쌓여서 쓰레기 밖에 안 될 것이다.
찍고 싶었지만 찍을 수 없는 사진이 있느냐의 후배의 질문, 없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 그리고 작가는 남도의 어느 방파제에서 사진을 찍다 말고 후배에게서 담배를 빌려 피우며 쓰린 속을 달랜 이야기를 한다. 그곳은 진도의 팽목항이다.
옆자리에 누군가 와서 앉았다.
잠을 깨운 것은 아카시아 향기였다. 오래전에 느껴본 젊은 사람의 공기가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왼쪽 빰과 후각을 자극했다.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감각만으로 시야의 바깥을 살폈다. 긴 파마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물든 여대생쯤 돼 보였다. 아카시아 꽃의 원래 향기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카시아 향이라 이름 붙인 향수 냄새일 뿐이었다.
어떤 얘기인지 궁금했다. 버스 옆 자리에 앉은 젊은 여대생의 이야기다. 봉지에서 꺼 내던 사탕 한 알이 떨어져 그녀의 손을 지나 허벅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표현까지 재미가 있다. 더 기대가 되었지만 이야기는 궁금증을 남긴 채 끝난다. 예전의 추억이 생각난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장거리 만원 버스에서 혹 내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행여나 작가의 글처럼 향긋한 향기와 긴 생머리의 여인이 옆자리에 앉기라도 하면 자는 척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었던 그런 추억 말이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들고 종종 우리는 웃는다. 사진의 어느 장면이나 사람의 행색, 아니면 사진 구석에 있는 작은 물건 하나에서라도 우리의 과거나 들어서 알고 있었던 지나간 사실과의 연관성을 발견하면 그 시점으로 돌아가 한동안 머물 수 있다. 사진으로 하여금 입을 열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 잊고 있었던 과거의 향수나 기억들이 마음에 일으키는 반향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발견이 재미있어 웃기도 하고 현재와의 거리에서 부질없음을 알고 서글퍼하기도 한다. 웃음과 눈물은 모두 회한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맞는 말이다. 사진만 찍다 왔기 때문에 남는 게 사진뿐이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렇다면 결국 사진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철학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세상에 대한 모든 질문이다. 통념상 ‘잘 찍는’ 문제 이후의 모든 질문과 지적 욕구들이 그렇다. 그것은 이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연구, 즉 철학이 해오던 일이고 예술이 발화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