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요즘 재미있게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 방송사에서 방영 중인 '구해줘! 홈즈'라는 프로그램입니다. 바쁜 현대인들을 대신해서 프로그램에서 의뢰인을 대신해 적당한 집을 찾아주는 예능 프로그램이죠. 수도권에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은 그곳에 일자리 및 교육, 의료 등의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많으니 소비가 많고 소비가 많으니 공급이 많은 선순환적인 구조이죠. 그러나 많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최근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전히 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 교통의 편의성 때문에 역세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만 요즘은 숲세권인지 아닌지도 선택의 기준이 되었네요. 왜 그럴까?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대도시라면 가끔 사는 게 답답하다고 느껴질 것 같습니다. 가끔은 답답한 도시를 떠나 맑은 공기가 있는 숲 길을 거닐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요?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되는 데 그게 어렵습니다.
15년 전 저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곳 사천으로 이사하면서 생활이 달라졌죠. 지금까지 쭈욱 숲세권 아니 산세권에 속하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뜹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갑니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우회전하면 안점산이 있고, 좌회전을 하면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비라도 내려 공기가 가라앉은 날에는 길 건너 있는 축사로부터 구수한 시골 냄새겨 풍겨 오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요? 가끔은 그 냄새가 싫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로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가지만 이른 아침에는 혼자 산책을 나갑니다. 지난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지난밤 많은 비가 내렸으나 새벽에는 그치고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날도 습관처럼 산책을 나섰습니다. 카메라 하나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갑니다. 아파트를 빠져나가 우회전을 합니다. 안점산 방향입니다.
그러나 도중에 코스를 변경했습니다. 지난밤 내린 비로 산길이 질척일 것 같아서 산 길을 따라 선진마을로 향했습니다. 나 홀로 산책을 나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동행자가 있었습니다. 아마 나 보다 더 일찍 산책을 나온 것 같습니다. 길을 가던 두꺼비 한 마리와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사천시 농업기술센터가 있는 마을이죠. 농업기술센터는 나에게 있어 미니정원 같은 곳입니다. 작은 연못도 있고 잘 조성된 조경과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합니다.
산길을 지나 신복리로 향해 걸었습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숲세권에 자리 잡은 동강아뜨리에 아파트가 보입니다. 남들은 달동네에 자리 잡은 집이라 말하지만 15년째 이곳에서 살지만 너무 좋아요. 행복한 보금자리입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산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저기 저 앞에 뭐가 있습니다. 풀이 무성한 콩밭이었는데 그 사이로 알록달록한 형채의 뭔가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면 모습을 보이고, 다가가면 움직이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녀석의 정체는 장끼(꿩)입니다. 그 자리에서 사진에 담아야 했었는데 망원렌즈가 아니어서 한 걸음 더 다가서려다 결국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런 작은 사건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욕심은 과하면 안 된다.
터벅터벅 한 걸음씩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급할 게 없습니다. 사진에 재미를 붙이면서 세상을 천천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산길을 돌아 마을로 들어서는데 오래된 건물들이 보였습니다. 예전에도 이곳을 지나갔었는데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작은 개울을 따라 그곳으로 향하는데 바로 그곳이 '박연묵 교육 박물관'이었습니다.
신복리를 지나면서 꼭 시간을 내어서 들러봐야지 했는데 들리지 못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개울 앞 나무에 빛 좋은 개살구가 탐스럽게 달려 있습니다. 낮은 곳은 이미 누군가의 손을 탔고 높은 곳에만 달려있습니다. 제가 작은 키는 아니어서 몇 개를 따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전이라 그런지 개살구도 맛이 좋았습니다.
살구나무를 보니 어린 시절이 떠 올랐습니다. 제가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정원에는 살구나무가 많았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살구를 수확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살구는 보리가 익을 무렵 수확합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예전 학교에 살구와 같은 유실수를 심은 것은 가난했던 시절 보릿고개를 넘어가기 위한 지혜가 아니었을까요?
박연묵 교육 박물관 입구에서 눈치를 살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박연묵 선생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오셨나고 물으셔서 사천시 SNS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고 우연히 지나다가 오게 되었고 기사를 쓰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냥 가볍게 나온 산책이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기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발을 하러 나가는 중이었다고 직접 소개를 시켜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미안하다시며 안내 책자를 주시며 편하게 구경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에 꼭 기록을 남겨달라고 하셔서 방문 기록을 남겼습니다.
천천히 박물관을 구경했습니다. 박물관을 구경한다기보다는 어린 시절로 소환된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듯한 그런 느낌입니다. 그렇게 '교사 시절의 집'에서부터 '학창 시절의 방'을 둘러본 후 선생님 부부가 생활하시는 안채를 지나 '책방 및 자료방'을 구경했습니다. 교사 시절의 집은 선생님께서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기록하고, 수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학창 시절의 방에는 학창 시절부터 사용한 교과서 및 서적들이 보관·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한편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산된 피아노와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풍금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풍금을 보니 어린 시절 교실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아련했던 옛 추억을 떠 올릴 때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떤 원리일까요? 원리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의류·수예 소품 방과 책방 및 자료방을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사모님이 서 계셨습니다. 다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박물관 구석구석을 천천히 구경을 했습니다. 의류·수예 소품 방에는 사모님께서 기계자수 기능공으로 있으면서 모아둔 각종 수예 도안과 그것을 기록한 공책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옷이나 이불을 짜실 때 사용했던 발로 밟아서 작동하는 재봉틀도 있었습니다. 책방 및 자료방에는 제가 어린 시절 보았던 각종 잡지와 전과, 초등학교 교과서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장독대 옆 자리에 오래된 우물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기에 뚜껑을 덮어 놓았지만 예전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이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퍼 올려 미숫가루를 타 먹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생각이 아니라 나의 어린 시절 추억입니다. 박물관을 구경하는 동안 계속해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 올랐습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면서 박연묵 선생님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농부와 농부의 아낙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더욱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뒤뜰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모과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 계절에 어디서 모과향이 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모과향의 정체는 치자나무였습니다. 지차 나무에 핀 흰 꽃에서 모과향과 비슷한 향이 은은하게 번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치자 꽃 향기에 취해 있는데 안채 슬레이트 지붕 위에 UHF 안테나가 보였습니다. 헐! 요즘은 저런 안테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또 옛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그 시절 가끔 TV에서 외화를 송출하거나 국가대표 간의 축구 중계가 있는 날이면 형은 안방에서 화면을 살피고 있고 저는 지붕 위에 올라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전파가 잘 잡히는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아시죠. 사람 몸도 전기가 통하기 때문에 가끔은 누군가 안테나를 잡고 있으면 방송이 잘 잡히고, 손을 놓으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형하고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잠깐 둘러보고 나올 생각이었으나 어느 순간 박물관 구석구석을 천천히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입니다. 누군가 옆에서 보았다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와 같은 또래 이거나 이 이상인 분들은 제 말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뒤뜰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어있었습니다. 이 시기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아마도 수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이슬을 머금고 있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밝았고 처마 넘어 넘쳐 든 빛이 석류꽃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옛 추억을 하나씩 소환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그곳이 '추억의 집'이었습니다. 추억의 집에는 농기계와 민속품 수십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뒤쪽의 제자들의 방의 벽면 게시판에는 선생님이 담임한 학급의 사진과 제자들의 문집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추억의 집 옆에는 '농기구의 집'과 '우마 차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옛날 생활의 집(민속관)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디딜방아, 맷돌, 그리고 길쌈 방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길쌈이 뭔지를 모르겠죠. 마지막으로 '그림의 집'을 구경하고 사모님께 잘 구경했다고, 구경하는 동안 행복했다고 말씀을 드리고 박연묵 교육 박물관을 빠져나왔습니다.
신복리에서 15년째 살고 있지만 마을회관을 자세히 살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건 핑계입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있어서 살짝 다가가서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녀석 겁도 없습니다. 터줏대감이 맞나 봅니다. 제가 '야옹'하고 부르니 녀석도 '야옹'하고 응대를 합니다. 다시 '야옹'하고 부르니 또 '야옹'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을 합니다.
천천히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저 멀리에서 선생님께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시 정중하게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구경하는 내내 행복했다고 마치 어린 시절로 소환된듯한 느낌이어서 좋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직접 설명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선생님 사진 한 장 남겨도 되는지 물었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글이 선생님께 전달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면을 통해 다시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교육 박물관을 구경하는 내내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 올릴 수 있어 좋았고, 그 시절을 생각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 이 글도 사천 소식지인 '사천 N'에 실리게 되면 책자를 들고 선생님을 뵈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방문해서 선생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설명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면서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