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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종주하기

하나모자란천사 2019. 5. 11. 16:27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힘든 고비를 넘어서야 할 때가 되면 산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산은 나에게 기쁨이었고, 행복이었고, 그런 상황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 줬다. 그래서 나는 산을 찾는다. 최근 한동안 뜸했던 산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산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라면 가까운 산을 오른다. 집 근처에 있는 안점산이다. 안점산은 그냥 산이 생각날 때면 나들이 삼아서 오르는 곳이다. 최근 나에게 닥친 상황은 가벼운 산행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거의 10년 만에 준비도 없이 오른 산행이었다. 좋았다. 아직 천왕봉 정도는 오를 수 있는 몸 상태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 좋았다. 그러나 뭔가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또 다른 산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산행이 와룡산 종주다. 내가 살고 있는 동강아뜨리에 아파트에서 출발해서 약수암 - 안점산 - 하늘먼당 - 용치재 - 백천재 - 민재봉 - 새섬봉 - 도암재 - 남양동 주민센터까지 15Km의 구간이다. 산행의 통계 기록을 보면 지리산 천왕봉과 비교해봐도 넘쳤으면 넘쳤지 부족함이 없는 산행코스다. 산행시간은 7시간이며, 상승/하강 고도가 1,500 미터이다. 지리산 천왕봉 산행 직후라 자신감은 있었다. 그러나 이 코스 역시 처음 사천에 내려왔을 때인 2007년 이후 처음이라 어떨지 몰랐다.



또다시 산에 오르고 싶었다. 예정에 없던 와룡산 종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김밥을 구입할 수 없었고, 다행히 아파트 상가가 일찍 문을 열어서 그곳에서 빵과 우유, 초코바 등을 구입했다.



아파트 후문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안점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집 근처에 언제라도 오를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시골 태생이라 그런지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고 정겹다.



벚꽃이 한창인 시기라 매화는 거의 지고 없었지만 산매화는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의 보살핌 없이 야생에서 혼자의 힘으로 피운 꽃을 보니 비록 들에서 보는 매화처럼 풍성함은 없었지만 더 강렬했고 뭔가 모를 에너지가 나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단순히 안점산에 오를 목적이었다면 무지개 샘터에서 잠시 쉬었다 산을 올랐겠지만 와룡산 종주가 목표이기에 쉼 없이 산행을 시작했다.



안점산 봉수대까지는 가볍게 오를 수 있었다. 가끔 오르는 곳이라 여기까지는 힘들지 않았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하늘먼당까지는 쉼 없이 걸을 생각이었다.



때가 3월 하순경이라 하늘먼당으로 가는 등산로 곳곳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있었다.



하늘먼당으로 오를 때 꼭 들리는 곳이다. 전망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르면 사천읍과 사천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다만 봄 황사철이고 미세먼지 때문에 이날 시계는 좋지 않았다.

사천읍 풍경

사천만 풍경


나의 산행이 심심치 않도록 곳곳에 이름 모를 꽃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이런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사진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런 풀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떠 올렸지만 요즘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먼저 떠 올린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혼자서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소나무 숲 길을 지나고, 돌무더기 구간을 지나고, 고래를 넘고 또 넘고 그렇게 계속 걸었다.



넓은 바위가 있는 구간이다.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출발해서 하늘먼당까지 다녀올 때면 아내가 이곳에서 편하게 드러눕는 곳이다.



와룡산 종주 산행을 시작하면서 하늘먼당까지는 쉼 없이 걷겠다고 계획을 세웠기에 이곳에서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이제 하늘먼당까지 1.2Km가 남았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절이 구룡사다. 하늘먼당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왼편으로 구룡사다 내려다 보인다.



쉼 없이 바쁜 걸음으로 걸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하늘먼당에 도착했다.



바로 여기가 하늘먼당이다. 해발 566m의 높지 않은 곳이다. 처음 출발했던 동강아뜨리에 아파트에서 이곳까지는 5Km이고 약수암으로부터는 4Km 정도의 거리다.



하늘먼당에서 용치재까지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 구간이다. 등산로가 소나무로 빼곡해서 거니는 내내 즐거웠다. 아마도 침엽수가 내뿜는 피톤치드 때문이 아니었을까?



용치재까지 내려왔다. 하늘먼당을 목적지로 산행을 시작하는 분들은 이곳 용치재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하늘먼당까지 오르는 분들이 많다. 아래 이정표에서와 같이 1.8Km의 짧은 구간이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지만 소나무 숲이 빼곡한 산길이기에 가족들과 함께 가볍게 산행을 즐기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그러나 나의 산행은 지금부터다. 하늘먼당에서 이곳 용치재까지 내려왔으니 이곳에서부터 백천재까지 1.5Km 구간은 다시 해발 550m까지 올랐다가 백천재로 내려가야 한다.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한 것 같다. 힘들었다. 이제 백천재까지 다시 내리막 구간이다.



드디어 백천재에 도착을 했다. 여기서부터 민재봉까지는 자주 오르는 코스다. 어쩌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초반 오버 페이스 한 것이 걱정이 되었다.



도시락 대신 준비해간 빵과 우유, 사과로 허기를 채웠다. 그리고 충분히 쉬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그대로다. 백천재에서 진분계 갈림길인 이곳까지 너무 힘들게 올랐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저기 저 앞이 민재봉이고 저 멀리 새섬봉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기 저 평상에서 한 숨 푹 자고 싶었다. 



너무 오래 쉬면 걸음이 더 무거워 진다는 것을 알기에 쉬지 않고 민재봉까지 걸었다.



평일이라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드디어 와룡산의 제2봉인 민재봉에 올랐다. 처음 내가 사천에 내려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곳 민재봉이 와룡산의 정상이었다. 그러나 예전에 내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처럼 2012년쯤인가 GPS를 통해 새섬봉이 민재봉보다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고, 지금은 새섬봉이 와룡산의 정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미쳤다. 왜 드론을 챙겼을까? 힘들게 가져온 드론이니 만큼 흔적을 남겨야 한다. 다행이다. 드론이 있었기에 이런게 혼자서도 셀카를 남길 수 있었다.



민재봉에서 새섬봉으로 향했다. 민재봉에서부터 새섬봉으로 향하는 구간은 사천 8경 중 제5경에 속하는 철쭉으로 유명한 능선 구간이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철쭉이 더 빨리 필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위 영상은 지난주 다시 와룡산에 올라서 찍은 영상이다. 다행히 종주를 하면서 올해는 철쭉이 일찍 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기에 제때에 맞춰서 와룡산 철쭉을 볼 수 있었다.



와룡산 종주를 할 무렵에는 절쭉은 없었지만 이 꽃이 곳곳에 자신의 자태를 뽐 내고 있었다.



헬기장을 지나고 새섬봉으로 향하는 구간은 와룡산 종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왼쪽 아래로는 와룡골이 내려다 보이고, 남쪽으로는 삼천포 바다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사천만이 내려다 보인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와룡산의 주봉인 새섬봉 뿐이다.



드디어 와룡산의 주봉인 새섬봉에 올랐다. 오전 9시경에 동강아뜨리에 아파트에서 출발해서 이곳 새섬봉에 도착한 시간은 2시40분이다. 5시간 30분을 바쁘게 걸었다.



이곳 새섬봉은 해발 801.4m이다. 민재봉보다 2.4m가 더 높아서 와룡산의 주봉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새섬봉의 표지석 뒤에는 '먼 옛날 와룡산이 바닷물에 잠겼을 때 이곳에 새 한마리만 앉을 수 있었다하여 새섬봉이라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새섬봉에서 다시 드론을 꺼 내어 나의 와룡산 종주에 대한 흔적을 남겼다.



이제 도암재를 거쳐서 와룡골로 내려갈 것인지 남양동 쪽으로 내려갈 것인만 남았다.



비록 날씨는 흐렸지만 와룡산 새섬봉은 언제 올라도 좋은 곳이다. 이렇게 서편으로는 사천만이 강처럼 흐르고 있으며,



남으로는 삼천포 바다와 멀리 남해와 여수까지 내려다 보인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기 앞서 오늘 내가 거닐었던 길을 되돌아 보았다. 저 멀리 산행을 시작했던 안점산이 보였다. 맨 뒤에 있는 저곳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도암재에서 상사봉을 찍고 남양동 방향으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상사봉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도암재에서 남양동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드디어 도암재까지 내려왔다. 이곳에서 남양동까지 약 3Km 구간은 힘들지 않은 구간이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다. 이미 12Km를 걸었기 때문이다.



원불교를 지나 주차장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봄은 봄이다. 곳곳에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었다.



저기 보이는 건물이 주차장 옆 화장실이다. 온 몸이 소금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남양저수지를 지나 남양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힘든 발걸음을 옮겼다.



남양저수지 앞에서 새섬봉을 올려다 보았다. 당분간은 와룡산을 찾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와룡산 종주 이후에 벌써 두 번이나 더 와룡산을 다녀왔다.



남양동 부대 앞 공터 주차장에서 오늘 내가 종주한 코스를 살펴보았다. 뿌듯했다.



드디어 목적지인 남양동 주민센터다. 이제 이곳에서 아내를 기다리면 된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