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가 고장이 났습니다. 참 오래된 녀석입니다. 신혼살림으로 장만한 것도 아니고 대학시절 자취를 할 때 구입한 물건입니다. 기본적으로 20년을 훌쩍 넘긴 녀석이죠. 결혼을 하면서 신혼살림을 따로 장만하지 않아서 자취할 때 사용하던 전자제품을 그대로 사용을 했는데 이제는 수명을 다하고 추억과 함께 하나씩 떠나보냈습니다. 그 시절에 사용하던 제품은 이제 오디오 하나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런데 이 녀석도 요즘 겨우 목숨만 연명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끔 정신을 잃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쿵쿵 쥐어박으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곤 합니다.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죠. 자취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이 녀석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죠. 주로 냉동식품 위주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아서 해동을 하거나 데우는 기능을 많이 이용하고 심지어 라면도 전자레인지에서 끓여 먹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도 전자레인지를 찬밥을 데우거나 냉동실에 있는 재료를 해동시킬 때 사용을 했었죠. 어느 날 아침 멀쩡히 잘 작동을 하는데 데우는 기능이 작동이 되질 않습니다. 부품의 이름은 모르지만 대충 어떤 부품에 문제가 있는지 알 것 같네요. A/S를 받을까 하다가 잠시 보류하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제품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헐... 전자레인지의 가격대는 2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싸네요. 당시에 전자레인지를 20만 원 넘게 주고 구입을 한 것 같은데 요즘 전자레인지를 10만 원대에서 구입을 할 수 있네요. 그래서 A/S는 보류했습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수리보다 새로 구입하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아내와 상의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쪽이고 아내는 없이 살아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했죠? 설마 나보고 찬밥 먹으라는 것은 아니지? 아내는 밥은 찜솥을 이용해서 데우면 가능하고, 냉동실의 재료는 미리 꺼 내어 놓으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네요.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햇반이나 다른 즉석식품을 이용하는 것을 줄일 수도 있고 가능한 조금씩 끼니마다 준비를 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네요.
역시나 미니멀 라이프를 한 보람이 있네요. 사실 저도 내심 아내가 그런 대답을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먼저 없어도 되지 않냐고 말하기가 좀 그랬는데 아내가 제가 원했던 대답을 해 주네요.
그렇게 전자레인지 없이 한 달 정도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은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참 아이들은 불만을 호소하네요. 아이들이 오뚜기에서 나온 냉동 피자를 좋아하는데 전자레인지가 있었을 때는 알아서 꺼내어 데워서 먹었는데 이제는 아내가 가스오븐이나 팬으로 구워 주어야 먹을 수 있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아내와 저는 그래서 더 잘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없이 사는 것 많이 불편할 것 같지만 없이 지내다 보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조금씩 심플 라이프(미니멀 라이프)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또 뭐 비울 게 없을까? 이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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