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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5 -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하나모자란천사 2017. 5. 1. 15:49

#0055 - 2017년 책 52권 읽기 서른여섯 번째 책입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에 읽은 첫 번째 책입니다.




나에게 인문학의 재미와 가치를 일깨워준 박웅현의 책을 다시 집어 올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의 광고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차별화된 그의 창의적인 광고의 근원은 인문학이라고 합니다. 그의 책을 통해 인문학의 재미와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 읽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네니나'도 그의 '책은 도끼다'를 통해서 꼭 읽어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도되어 결국은 설 연휴를 통해서 3권을 완독 했습니다.

박웅현이 성공시키 광고의 헤드 카피들


이 책을 통해서 또 나를 인문학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를 기대합니다. 

책의 공동 집필자인 강창래 씨는 이 책의 목적이 '박웅현이 가진 창의성의 비밀'을 캐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가 가진 창의성을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제 이 책에 빠져 들어가 보겠습니다.


독서와 창의성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라 같이 묶어서 생각을 해 보지 못했는데 결국 창의성도 독서에는 나온다는 것을 이 구절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창의성을 가장 잘 배우는 방법 역시 '전수받거나 습득하는 것'이다. 전수받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스승과 함께 부대끼면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 강의를 듣는 것, 책을 읽는 것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방법을 늘 최고라고 하지만 묘하게도 인류는 그런 식으로 발전해오지 않았다. 인류는 무엇이든 책을 통해 내리 물림 해왔다.


공감하는 구절입니다.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초등, 중등, 고등교육까지 그리고 요즘은 대학은 거의 대부분 거치게 되니 그때까지는 배움에 대해 어느 정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로 나오면 어떤가요? 물론 배움의 과정에서도 환경(다른 교육환경)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환경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배움이 멈춰 버립니다. 학교에서의 배움이 토대가 되어서 스스로 익혀야 하는 시기이나 몇 % 나 그렇게 하고 있을까요? 인류는 무엇이든 책을 통해 내리 물림 해왔다는 말이 많이 와 닿습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독서를 통해서 꾸준히 배우고 학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아이에게 책을 읽으면 좋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제일 효과적인 소재를 하나 건졌네요. 창의성과 관련된 책을 읽으니 나도 조금 창의적으로 엉뚱한 발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사랑받는 여인의 입장이고 나에게 두 남자가 연애편지를 보냈는데 위와 같은 경우라도 후자에게 마음이 훅 끌리겠습니다. 따라서 나는 독서에 대해 이런 엉뚱한 공식을 적용해 봅니다. 독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쟁취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컴퓨터와 생각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광고회사입니다. 광고회사에는 생산 라인이나 널따란 공간, 시설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생각을 만들고, 생각을 파는 것이 광고회사이거든요."


이 말은 박웅현 ECD가 직접 한 말입니다. 이 말에서 많은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광고를 필요로 하는 곳은 기업들이었습니다. 소비자가 대부분 TV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TV를 통해서 광고를 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가 전달되는 경로나 매체도 다양해졌습니다. 또한 정보를 만들어 내는 주체도 특정 언론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누구나가 마음만 먹으면 만들어 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광고를 만드는 일이 기업적으로 행해지는 것 외에 개인들을 위한 1 인 광고 형태의 서비스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한 번 도전해 볼까요?




IDG에 1 인 미디어와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어 링크를 남겨봅니다.



인문학 = 창의성의 원천
창의성 = 콜럼버스의 달걀
왜?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것

그림으로 보아서는 어떤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되죠?

먼저 제일 왼쪽에 있는 그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조금 크게 보입니다. 초등학교의 시험문제와 답안지입니다.

엉뚱한 아이들의 답이죠. 웃음이 나옵니다.

혼자 웃기 아까워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보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 씁쓸함은 왜일까요?


다음은 성냥개비 4개로 밭 전(田)을 만들어 보라는 문제입니다.

기존의 일반적인 사고의 틀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틀을 깨뜨리면 가능해집니다. 

문제는 다시 왼쪽의 그림에서와 같이 아이였을 때는 정해진 답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표출하다가 왜 어른이 되고 나서는 정해진 답만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 어른들이 제도화시킨 틀 안으로 아이들의 사고를 가두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에서 가장 큰 놀라움이다.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이고 아는 만큼만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걸어가야 할 인문학의 세계는 아직도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이 시를 읽어 보라.

그리고 상상해 보라.

나는 몰랐다.



이 책이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저런 엉뚱한 상상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는 순간은 흥분이 됩니다.

당장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상상 속의 나는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들이 언제가 그 상상을 현실의 무대로 옮겨서 나를 그곳으로 이끌지 않을까를 생각하면 지금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박웅현의 광고에 대한 이야기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박웅현의 광고는 창의성이 살아 있다.

어떻게... 

그는 평소 인문학적 소양의 책 읽기를 통해서 소재를 충분히 모으고 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소재를 발견하고 있다.

그의 창의성은 그 소재가 사용될 시대를 정확하게 간파하는 데 있다.


책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만족도는 떨어집니다.

작가 박웅현이 아닌 광고 제작자 ECD로써의 박웅현을 알아가는 것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박웅현이란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저자 강창래 씨가 박웅현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 책입니다.

박웅현의 이야기를 담아서 공동 저자에 박웅현의 이름을 담았지만 저자는 박웅현이 아닌 것 같네요.

그래서 처음 기대치보다는 다소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책일 다 읽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굳이 보지 않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나만 고개를 갸우뚱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이 책을 많이 찾지 않은 것 같네요.



그냥 웃습니다.

좋은 느낌과 기분만 간직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