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Story

#0091 -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나모자란천사 2017. 10. 1. 19:45

 2017년 책 52권 읽기 일흔 번째 책입니다.


지금까지 삶을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이 없었다. 우리의 인생이 80이라고 했을 때 반환점을 찍은 시점에 돌아갈 준비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해 보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생명은 급속도록 증가하였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인류의 평균 수명은 30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 100년 사이에 인간의 수명은 80을 넘어 100세 시대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인류의 생명이 늘었지만 무병장수가 아닌 유병장수를 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의료 행위에 대해 사람을 살리는 것, 곧 죽지 않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어떻게 죽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책의 부제에서와 같이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자신이 의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만난 다양한 환자들 특히나 현대 의학이나 의료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삶의 마지막 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을 정리한 책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또 사회봉사나 요양원 등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보건복지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 아내에게도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다. 아직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기는 아니지만 내 나이쯤 되면 부모님과의 이별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20살에 아버지는 보내야 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냥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당시 아버지는 53세의 나이였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내가 자라는 동안에 병원 문턱을 한 번도 넘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 단 한 번의 병원 문턱을 넘고 그렇게 세상과 등질 것이라 생각을 못했다. 때문에 본인도 더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고, 가족 모두도 아버지가 더 살아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만약 지금의 상황이라면 아버지를 그때처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내게 어머니와 장모님이 계신다. 아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내와 진지하게 웰다잉 곧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남은 가족의 구성원으로 어떻게 보내 드릴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 과거에 비해 분명 더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을 누리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더 그렇다. 때문에 늙으신 부무님의 봉양은 요양원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것이 효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나 조차도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나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이 큰아버지(당백부)의 일과 이 책이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어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대 사회에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공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 이유는 지식의 원천이 인생의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상의 변화로 지금은 노인들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이 가치가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본인에게만큼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이 책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확실이 미국은 우리보다 노인세대의 문제는 20~30년 앞서서 경험을 한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노인 요양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요양원이 노인 복지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이미 미국은 다양한 실패와 경험을 통해 요양원 통해서 노인들의 복지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호스피스제도(웰다잉법)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인간답게 떠나고 싶은 이들을 위해 즉 웰다잉을 위한 웰다잉법이 통과가 되었다. 그리고 전국에 호스피스 병동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때가 되면 아내와 내 아이들에게 내가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고통까지 감수할 수 있으며,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 때 삶에 대한 만족을 누릴 수 있는지를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에는 DNR(소생술 포기 서류)도 작성해서 가족들에게 제출하고 싶다. 죽음을 경험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삶을 누리는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는 얘기가 있다. 굳이 그런 경험이 아니더라도 내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삶을 산다면 하루를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저자인 아툴 가완디가 인용했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