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5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래프 톨스토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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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5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래프 톨스토이

삶의 행복을 공유하는 하나모자란천사

 2018년 책 100권 읽기 일흔 번째 책입니다.


또다시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는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통해서 나는 10월(볼셰비키) 혁명 이전의 러시아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소설의 배경이 된 1800년대 후반의 러시아의 모습이다. 물론 내가 그의 소설을 통해 보는 러시아의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통해 본 러시아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만약 10월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러시아가 공산화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러시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물론 이런 상상이 이 소설과는 무관하다. 그냥 내가 톨스토이의 소설의 읽으면서 소설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시대의 러시아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던 내용이다.




오늘 읽은 소설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소설이다. 그의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 '유년시절·소년시절·청년시절'에 이어 세 번째이다. 



이 소설은 작가 래프 톨스토이가 그의 인생에서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정점에 올랐을 때 행복이 아닌 죽음의 필연성에 집착해서 쓴 글이라고 한다. 그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어떤 고통스러운 과정이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제 죽을 때가 됐다고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가 40대 초반(41세)이었을 때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장수하여 83세에 죽었다. 참고로 그가 살던 시대에 러시아 성인의 평균 사망 연령이 41세였고, 래프 톨스토이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의 죽음을 많이 경험했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것이 아닐까. 힘들고, 슬프고, 아픈 경험이었지만 그는 상처로만 남기지 않고 위대한 작품으로 남겼으니 그에게는 힘들었겠지만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후대에는 큰 축복이 아니었을까.


새벽 두 시였고. 나는 피곤했다오. 자고 싶었고 내 건강은 정말 좋았소. 그런데 갑자기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나를 덮쳤소. 그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소…, 그처럼 고통스러운 기분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다른 이들은 그런 기분을 경험하게 되지 않기를.



인용된 위 글은 1869년 9월 4일 그의 아내 소피야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라고 한다. 편지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가 죽음에 대한 고통과 공포를 느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집착과 공포가 남달랐기 때문일까. 그의 소설에서 다루는 죽음의 내용은 꽤나 깊이가 있게 느껴진다. '안나 카레니나'에서의 여주인공의 자살이나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콘스탄틴 레빈의 형 니콜라이의 죽음도 그렇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더라도 그렇다.


이 소설을 극찬한 사람 중에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이 있다. 그에게 이 소설은 그가 죽기 전에 읽은 최후의 문학작품이며 이 소설을 읽고 그는 낙담해서 이런 문구를 썼다고 한다. 


내가 한 모든 일은 무의미하며 내가 쓴 열 권의 책 역시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빠르게 읽었다. 소설에서 속도감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주인공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린다. 이미 제목에서도 주인공의 죽음이 드러나 있다. 이후 그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가 죽기까지 빠르게 전개가 된다. 빠른 전개 때문에 이 소설을 하루 만에 읽었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다. 참고로 내가 읽은 이 소설은 죽음과 관련된 3편의 단편을 묶어서 발행된 단행본이다. 책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세 죽음', '습격'이라는 소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최고는 역시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이제 그의 소설을 읽는데 부담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이 나에게 닥쳤을 때의 공포를 알게 되었다. 주인공인 이반 일리치의 감정 표현을 통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작가인 래프 톨스토이가 느낀 감정이기도 하다. 인용된 글 몇 구절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아침이 되었든 저녁이 되었든 또는 금요일이 되었든 일요일이 되었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그를 고통스럽게 짓누르는 통증도, 아직은 그에게 붙어 있지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계속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가는 생명을 인식하는 것도 모두 그대로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여전히 무시무시하고 가증스러운 죽음만이 유일한 진실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 거짓이었다. 이런 마당에 무슨 요일이고 몇 주가 흘렀으며 또 몇 시인지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구절을 읽다가 죽음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떠 올렸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느낄 고통이고, 누구나 한 번은 느껴야 할 고통이다. 그 고통을 피할 수만 있다면...


모르핀이라도 다시 맞았으면, 여전히 끔찍합니다. 통증은 계속되고 전혀 수그러들지도 않아요. 제발 어떻게 좀 해주시오. 또다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었고, 다시 똑같은 밤이 찾아왔다. 다시 일 분이 지나고 또 일 분이 지났지만, 한 시간이 흐르고 또 한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더 이상 찹지를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는 의지할 데 없고 한없이 고독한 자신의 딱한 처지가 서러워 울었고, 사람들의 냉혹함과 하느님의 잔인함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가 원망스러워 울었다. 도재체 왜,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제발 부탁인데,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날 좀 내버려 둬. 그가 말했다.


모두 주인공인 이반 일리치가 죽음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남긴 말들이다. 결국 죽음의 직전에서야 그는 이 고통에서 해방받을 수 있었다. 죽음으로 이 고통이 끝이기를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죽음의 이후를. 더 많은 그의 작품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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