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Story

#0160 - 노르웨이의 숲(下), 무라카미 하루키

하나모자란천사 2018. 5. 22. 19:12

 2018년 책 100권 읽기 마흔다섯 번째 책입니다.


노르웨이의 숲 상권은 도서관에서 책을 잡은 후 그날에 책을 다 읽었다. 하권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권을 읽기까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고 상권에 비해 책이 재미가 없거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뜻하지 않은 일들이 많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이지만 그래도 이 책만큼은 계속 읽고 싶었다. 그만큼 책이 재미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나의 독서를 보면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그저 재미로 읽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해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비록 읽고 그것으로 끝이라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같다면 계속 소설을 읽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내려놓으면서 문학과 예술은 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의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일까 궁금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깊은 뜻까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을 내려놓고 제일 먼저 한 것이 유튜브를 통해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검색이다. 독서 노트를 쓰기 전 노르웨이의 숲을 몇 차례 반복해서 들었다. 이렇게 문학은 나를 잘 몰랐던 음악에게로 인도했다. 아마도 조만간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 같다. 이처럼 재미있게 읽은 한 권의 소설은 다른 좋은 경험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이유만으로도 소설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인 전현무 씨가 '비정상회담'이란 방송과 '나 혼자 산다'라는 방송에서 이 책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는 '상실의 시대'로 출간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책에 대해 야해서 3일 만에 다 읽었다고 했다. 맞다. 이 책은 야하다. 이 소설에는 섹스 장면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소설의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자주 표현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저 그런 야한 소설로 생각되지 않는다.


책은 1969~1970년대 일본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는 '와타나베'라는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다.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저자의 후기를 통해 자서전적인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1987년에 출간이 되었으니 30대 후반에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 소설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젊은이들에 대한 사고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1990년대 내가 대학을 다닐 시점에서 왜 그들에게 인기가 있었을까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동질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인 와타나베의 행동을 따라 여행을 떠난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만약 여행지에서 운명처럼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처럼 여행을 떠나 온 이성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책이 출간되고 흥행을 하면서 소설을 따라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니 충분히 그런 일이 있었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는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우리의 인생 자체가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